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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May 23. 2023

협동조합을 그만하기로 했어요

부쩍 날씨가 더워졌어요, 안녕하신가요? 단체 메신저 대화방에 알음알음 국민동의청원, 서명운동 등에 참여를 요청하는 소식이 올라옵니다. 그 주제나 해당 지역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동네와 지역사회가 조금 더 나아지길 기대하는 마음이겠죠.


투표로 현실 정치에 실제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렇게 선출된 리더가 임기 동안에는 그 이름으로 내려지는 결정에 영향력을 끼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공약을 저버린 리더를 소환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고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노력이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요?


국민동의청원에는 지금도 많은 청원이 올라와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2020년 1월부터 국민동의청원 사이트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이 과정을 거쳐 텔레그램 등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 각 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습니다.




협동조합이 왜요?

잊을만하면 정기적(?)으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을 ‘좀비기업’으로 지칭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기사 링크는 따로 달지 않겠지만, 제목을 보면 이런 식입니다. 


사회적경제법은 '좀비기업 육성법'
10년새 확 늘어난 '좀비 협동조합'
연 7조원 '운동권 퍼주기법', 박원순 생태계 복원하나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경제가 특정 정치권의 전유물이 아닌데 사회적경제 활성화가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특정 집단에 자원을 퍼주는 행위라는 우리의 인식과 논의 수준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유럽연합(EU)의 사회적경제조직은 2017년 기준 약 280만 개로, 전체 고용의 약 6.3%를 차지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재정경제부 사회연대경제·공동체생활 담당(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and the Voluntary Sector) 마를렌 시아파 국무장관은 사회연대경제기업이 프랑스 GDP의 10%, 일자리의 14%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 보험에 가입된 차량 5대 중 3대, 어린이집의 절반이 사회연대경제기업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 분야는 성장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아직 전체 고용의 1% 수준이니까요(...). 사회적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인식 개선이 뒷받침된다면, 혁신의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 연구보고서인 ‘기업형태별 청년창업 지원정책의 효과성 분석’에 의하면 중소기업, 사회적기업 등 청년창업 기업형태별 지원 규모 및 생존율이 협동조합은 지원금이 평균 1500만 원(중소기업 평균 7천만 원, 사회적기업 평균 3천만 원)으로 가장 적지만 5년 생존율은 75.3%(창업지원 중소기업 평균 57.1%, 창업지원 사회적기업 평균 57.3%)로 가장 높다고 합니다. 그 가능성의 씨앗을 더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청년창업 지원정책은 벤처기업 등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의 창구로 사회적경제기업이 역할할 수 있도록 사회적경제에 대한 지식과 친숙도를 높이는 작업은 물론 이들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각 부처의 지원이 필요한 때입니다.








존 루이스 파트너십을 아시나요?

얼마 전,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존 루이스 파트너십(John Lewis Partnership)이 자본 조달을 위해 소수의 지분을 매각, 외부 자본을 조달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요. ‘존 루이스’는 대표적인 노동자협동조합이기에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의 존 루이스 파트너십은 1930년대 소유주가 회사의 지분을 영구 신탁(trust)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부여한 이후 직원들의 경영 참여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종업원 지주 회사(Employee Ownership Company)입니다. 현재 영국 전역에서 존 루이스라는 이름의 백화점 34개, 아웃렛 1개, 웨이트로즈(Waitrose)라는 슈퍼체인점 329개 등에 7만 4천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어요. 존 루이스는 전체 소유권을 일하는 사람이 갖고 있고, 7만여 명이 넘는 직원은 공동 사업자(partner)로 함께 사업체를 운영합니다. 외부의 주주는 없고 회사의 모든 주식은 특별히 설치된 신탁(trust)에서 관리하는 구조인 거죠.


그런데 계속된 경제 위기 속 존 루이스는 지난해 약 2억 3400만 파운드(약 3800억 원)의 손실을 냈고, 전체 매출은 2% 감소한 120억 파운드(약 19조 9600억 원)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3월에는 3년 만에 두 번째로 직원 보너스를 취소하고 일자리 축소를 경고한 상황입니다. 손실을 계상하고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존 루이스는 소수의 지분을 매각해 약 10억~20억 파운드(약 1조 6600억 원~약 3조 3300억 원)로 신규 투자를 받으려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이에 대해 여러 곳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상황입니다. 물론 존 루이스에서는 파트너십 신탁(Partnership Trust)에서 통제권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요. 


영국 협동조합당의 짐 맥마흔(Jim McMahon) 위원장은 존 루이스의 계획에 불안함을 느끼는 한편, 최근 협동조합, 상호회사 및 우애조합 법안(Co-operatives, Mutuals and Friendly Societies Bill)의 일부 개정을 발의했는데 이러한 제도적 보완 마련의 시급함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이 법안은 현재 영국 의회에서 3번째 소위원회 토론까지 마친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법안이 개정되면 협동조합이 발행하는 주식 자본 유형의 문제나 후배주(deferred shares)*를 발행하는 상호회사 및 우애조합에 대한 과세 관련 조항 마련, 협동조합/상호회사/우애조합의 자본 잉여금 비분배(non-distributable)를 허용하는 등의 변화가 있게 됩니다. 
*후배주는 보통주에 비해 이익배당이나 잔여재산 분배의 참가 순위가 열위에 있는 주식으로 통상 배당을 지급하지 않고 의결권만의 부여를 목적으로 발기인 등에 제공되는 주식이라고 합니다. 후배주를 발행한 회사는 이것을 종종 ‘발기인 주식(founders’ shares)’이라 부르며 이 주식을 회사의 발기인들에게 발행합니다.


존 루이스의 목적은 '더 행복한 세상을 위한 파트너십Working in Partnership for a Happier World'입니다. 물론 외부 자금이 들어온다고 해서 존 루이스의 거버넌스에 급격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그렇게 믿고 싶어요!!) 협동조합을 비롯한 상호회사 등이 사업 확장 등 규모화나 혁신을 모색할 때 필요한 자본을 구하지 못해 탈상호화(demutualization), 그러니까 법적 형태를 주식회사로 바꾸는 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영국 런던에 있는 지인이 보내준 존 루이스 백화점 사진입니다. 옥스퍼드 스트리트에는 런던을 대표하는 유명 백화점들이 많은데요, 존 루이스가 1864년 1호점을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개설하고 영업을 시작했죠. 사실 제게 존 루이스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나오는 광고 때문에 더 애정하는 대상입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광고 그 자체가 늘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작년 광고 한 번 보시겠어요?




그래서 오늘의 논문은


지난 2020년 나온 협동조합 자본조달 사례 조사 및 시사점을 살펴봤습니다. 보고서는 2020년 당시 자본을 필요로 하는 두 개 협동조합 사례를 조사했는데요, 기존 협동조합이 사업확장을 위해 자본을 조달하는 사례로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신규협동조합 사례로 전남 목포에 소재한 건맥1897협동조합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과 살짝 시차가 있지만, 꼼꼼한 사례 조사를 통해 협동조합 자본조달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본 조달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돈을 마련하는 행위'일 겁니다.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다양할 텐데요, 중요한 차이는 ‘어떤 도구를 이용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자본을 모으고, 누가 그것을 통제하고, 통제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는가'에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이익만을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출자한 자본에 비례해 주주 가치나 이익을 최대화하지 않고, 협동조합과의 거래 실적에 따라 조합원에게 혜택을 줍니다. 일반 기업의 주주는 기업의 순자산가치에 대한 권리가 있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자산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지만, 조합원의 출자금을 대개 명목 가치로만 유지하는 대부분의 협동조합에는 그러한 것도 없죠. 협동조합은 조합원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되어, 돈을 많이 투자한다고 통제권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이런 협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어찌 보면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구성원들 간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협동조합 리더들은 일반 기업의 리더와 마찬가지로 건전한 자본조달 계획과 전략 수립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협동조합 원칙의 보존이라는 추가적인 차원까지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렵죠. 보고서에서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고 어떻게 자본을 조달했는지 정리하고 있는데요,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쉽지 않겠다 싶어요. 이렇게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회적경제조직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협동조합이, 사회적기업이 잘 커갈 수 있도록 단단하게 땅을 다지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봅니다.



지난 4월, 스페인 정부가 새로운 사회적경제 입법 제안과 함께 2023~2027 사회적경제를 위한 새로운 국가 전략을 승인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과 제도를 차근차근 정비해 간다는 것이 부러웠고 또 노동 및 사회적경제부(Labour and Social Economy)라는 정부 부처의 존재가 부러웠습니다.


앞서 살펴본 프랑스도 그렇고 스페인도 사회적경제를 전담하는 부처가 있는데요, 사회적경제 활성화가 단기적인 과제가 아니라 지속해서 이어가야 할 기조이며, 그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정책 및 인프라를 만들어간다는 것에 의미가 있겠다 싶어요. 이 부러움이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요? 무수한 물음 속에서, 이번 회차 논문 읽기를 마무리합니다.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https://diveintocoop.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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