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2021.05.13

by 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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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생 때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악착같이 살기 만한 건 아니었고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열심히 살았었어요. 술을 마시며 단순한 즐거움을 좇기도 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나눈 이야기와 관계에서의 즐거움을, 꽤나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던 돈을, 듣는 수업에서의 좋은 성적을 좇기도 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비해 자유로웠던 대학생활이 참 즐거웠고, 재미있었고, 황홀하기까지 했습니다.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었던 거 같고 무언가 조금씩 해나가고 깨달아가는 작고 연속적인 즐거움들 때문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 관성이 남아있어 대학원 생활에서 연구도 하고 이렇게 유튜브와 브런치도 병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게 잡생각이 별로 안 든다는 점입니다. 저는 평소 생각들이 많다 보니 자칫하면 비관적이거나 에너지만 소모하는 생각들에 빠지기가 쉽거든요. 일단 뭐라도 열심히 하고 있으면 그 생각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아도 돼서 좋기도 했습니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에 빠져 열심히 살았던 셈이죠.


그런데 사실 열심히 사는 게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닙니다. 다행히 열심히 한 것에 대해 보상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단순히 지쳐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요. 그 순간들도 좋았지만, 언젠가 그 경험들이 하나로 이어져 앞으로 제가 나아갈 길을 딱 정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많은 경험을 할수록 제가 앞으로 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지들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고, 더불어 그 선택들을 함으로써 얻거나 잃게 될 것들이 직관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선택지가 많다 보니 방황하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열심히 살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수록 앞으로의 길이 선명해지리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으니 불안하고 허무한 마음이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이렇게 애쓰는 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들며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경험은 그저 경험일 뿐이라는 겁니다. 과거의 경험이 제 앞날까지 결정해주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었어요. 경험을 바탕으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제 몫이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결정할 용기가 없다면 경험을 과거의 황홀했던 추억으로만 남겨두면 됩니다. 알고는 있지만 용기를 내어 앞으로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대가인 셈이죠. 더불어 지금 이 시기에 제가 저에게 딱 들어맞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자유롭게 경험들을 선택하기 시작한 건 대학생 때부터 인데,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나긴 했어도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니까요. 아직도 저는 꽤나 크게 크게 변해가고 있고 마주하지 못한 경험들이 많기에, 벌써부터 저를 잘 알고 있어서 앞으로 만족스럽기만 할 수 있는 선택을 한다는 건 너무 욕심인 거 같아요. 한 40대쯤 되어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좀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아직도 잘 모르는 제 자신을 더 잘 알아 가기 위해서, 이전에도 그래 왔던 것처럼 작은 성취들에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무의미할 정도로 복잡하기만 한 생각들이 제 삶을 허무로 끌고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 내야 한다고 믿습니다. 게다가 마음과 몸의 에너지가 평생 지금처럼 유지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토록 열심히 살 수 있는 시기도 정해져 있을 테니, 일단 뭐가 됐던 불태워 보자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는 않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경험만을 너무 맹목적으로 좇지도 않아야겠어요. 열심히 하는 건 억지로 참고 견디기만 하는 게 아니니까요. 참을 때도 있고 못 참고 잠시 내려놓을 때도 있을 텐데, 그래도 괜찮을 거고 또 내려놓을 때는 그게 참 달콤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그 찝찝하고도 달콤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저 편히 즐기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누군가 저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고 묻거든, 그래야 살아 있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자 합니다. 아직까지는 열심히 살지 않고 즐거움을 얻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죠. 어차피 인생이 짓궂게 저를 평생 괴롭힐 거라면 할 수 있을 때까지 발버둥 치며 살아보려 합니다. 결국 끝은 죽음으로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애쓴 작은 흔적들이 쌓이면 그 끝을 직접 마주했을 때 꽤나 만족스러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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