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은 연구를 하는 곳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연구를 배우는 곳이죠. 그래서 대학에 속해 있는 것일 테고 회사보다는 학교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학교는 아니죠. 엄연한 조직이고 연구를 위한 돈이 필요한 곳이기에, 연구 이외에 과제 수주를 위한 활동과 조직이 운영되기 위한 행정업무들도 함께 돌아갑니다. 유학을 가보지 않아 정확한 정보는 아닐 수도 있고 분명 연구실마다 다른 부분이 크지만, 통상적으로 해외의 경우에는 행정업무와 과제 관련 업무의 역할이 잘 나뉘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거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원에 오게 되면 학업과 연구뿐만 아니라 기타 업무들도 함께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문제는 이 업무 구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필연적으로 분배되는 양이 불균등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만, 대학원에서 유독 그 문제가 두드러지는 듯해요. 대학원에 오는 이유는 일이 아니라 연구를 통한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니까요. 그래서 대학원생은 보통 연구 외 업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음에도 누군가는 일을 맡아서 해야만 하는 경우가, 심지어는 그 일이 한쪽으로 쏠리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상적인 대학원생이라면 주어진 업무도 척척해내고 연구도 잘하는, 그야말로 슈퍼맨 같은 사람일 겁니다. 교수와 구성원들에게도 인정받는 연구실 핵심자원일 가능성이 높죠. 그러나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연구와 업무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할 겁니다. 연구실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맞겠죠. 나아가 일에서 좋은 성과를 내 과제를 더 수주해 온다거나 결과가 연구로 이어질 수 있으면 좋을 겁니다.
하지만 내 연구처럼 모든 걸 쏟아붓지 않아도 일은 마무리될 수 있고, 일과 연구는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대학원생의 본업인 연구를 잘하는 것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거죠. 물론 연구실 내에서 인정을 받고 그 공로를 치하해줄 수도 있겠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인간의 특성상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감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본인을 소모하다가 정작 중요한 연구를 못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요.
좋은 조직이자 연구실은 필연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한 노고를 감사히 여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아서 그런 연구실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조금은 덜 힘들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대학원생은 일을 하러 대학원에 온 것이 아닙니다. 일을 잘하기 위해 모든 애를 쓰다간 본인의 연구는 하나도 챙기지 못한 호구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