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연구 관련 미팅이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미팅은 압박 투성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꽤 괜찮은 소득이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졸업은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거든요. 그동안 교수가 제시하는 높은 기준을 만족해야만 졸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 미팅을 하고 선배와 얘기도 해 보니 그건 아니었습니다. 지금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졸업은 할 수 있겠지만, 연구적으로 의미가 부족한 건 사실이니 연구적인 성과를 위해 교수가 몰아붙이는 거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미팅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제가 맡은 과제에 대해 브리핑을 했는데, 연구적인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단순히 과제를 해결하는 쪽의 방향을 제시했거든요. 그걸 들은 교수는 저를 질책했습니다. 과제에서 연구적인 의미를 찾아내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넘기라며 말이죠. 연구실은 높은 목표를 좇는 조직이어야 하니 적당히 할 거면 빨리 말해 주는 게 피차 좋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더 실랑이 벌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냐는 질문에는 '연구적 의미는 계속 고민 중이다. 지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 능력이 모자라서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과제에서 연구주제를 찾아야 의미가 있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애쓰지 않은 것도 아니고요. 다만 당장에 그걸 찾아내어 과제를 완수 하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런 답을 하고 나니 격려를 하더라고요. 제 능력이 부족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말이죠. 분명 격려이자 칭찬이었는데 별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높은 목표만을 추구하도록 끝없이 채찍질하는 환경에 몸도 마음도 다 닳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팅 자체는 좋게 끝났습니다. 과제 내용 뒤에는 연구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준비되어 있었거든요. 해당 내용 발표가 끝나자 교수는 아이디어 겸 다음 방향을 제시해주며 자기가 세게 말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앞의 내용만 들으면 연구적인 고민이 없었다고 생각했을 수 있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 탓인지 기분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그냥 또 하나의 미팅이 지나간 순간이었죠.
높은 목표를 위해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반복적으로 동기를 부여해주는 교수를 만난 건 어찌 보면 행운입니다. 너무 비합리적이고 악질인 교수들이 많아 정상적으로 연구를 독려하는 환경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학원생으로서는 참 좋은 일이죠. 그 사실을 잘 알지만, 그래도 상당히 높은 기준 때문에 그동안 받아온 스트레스에 지친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저는 이 정도면 충분히 잘 버텨왔고 할 만큼 한 것 같아요. 그래서 남은 시간도 최선을 다 하긴 하겠지만, 연구적 성취가 저의 최우선은 아닙니다. 제가 지금 바라는 것은 좋은 논문이 아니라 그저 안녕한 졸업일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