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는 꽤나 낭만적인 일이다

2021.06.25

by 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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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생활을 영상과 글로 남기자 결심한 지도 1년 반 정도가 되었습니다. 모든 일이 항상 즐거운 수만은 없기에, 이 기록도 좋고 나쁜 일들이 섞여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요. 지금 기록을 되돌아보니 너무 힘들고 안 좋은 이야기만 많이 남겨 놓은 것 같더라고요. 제가 대학원에서 주로 느끼는 감정이 힘듦과 회의감이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남겨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원 생활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라는 행위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는 분명히 낭만적인 일이거든요. 그냥 낭만이 저와 맞지 않을 뿐, 한없이 비효율적이기만 하거나 의미를 찾는 게 불가능한 행위는 아닙니다. 꽤나 힘들어하는 저조차도 실제 대학원 생활을 하는 중간중간 작은 희열들이 느껴지기는 하니까요. 비록 작고 미천할지라도 조금씩 결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 혹시라도 운이 좋아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거나,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꽤나 자극적인 성취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과정을 위해서 보통 이전의 연구결과들을 탐색하고, 고민과 실험을 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발전시켜나가죠. 전 세계의 논문들을 찾을 수 있는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의 메인 페이지에 가면,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전부터 쌓인 거대한 지식 위에 올라가서 그곳에 자신의 지식을 한층 더 쌓는 일이 바로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차근차근 성장하며 지식적으로 유의미한 문제를 발견하여 해결하고, 논문이라는 형태의 글로 그 과정과 결과를 담아내어, 전 세계의 동료들에게 인정받아 학회나 저널에 출판되는 일련의 과정이 연구자로서 반복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성취를 세상에 나누는 것은 물론, 인류 지식의 진보에 한 발을 보태는 행위이다 보니 고귀한 사명감을 가지는 것 또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연구는 꽤나 큰 의미를 갖습니다. 아예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기존의 비효율적이었던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거대한 비용절감도 이뤄낼 수 있으니까요.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연구성과들이 임계치를 넘어섰을 때 만들어낼 기대 효과가 워낙 크다 보니, 사회가 연구라는 행위에 많은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지식을 탐구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사회에 현실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행위가 연구인 셈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강렬한 낭만은 연구를 통해 자신의 지식과 논리체계가 점차 성숙해질 수 있고, 그것이 곧 전문성이자 실력이 되며, 지식인으로서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존중 또한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 연구자들은 새롭고 낯선 문제들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과거 선인들의 지식체계와 자신의 직관까지 합쳐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연구를 통해 길러지는 셈입니다. 개인의 성장과 성취의 관점에서 이토록 체계적인 전문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연구에 뜻을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제 대학원 생활이 정말 힘들긴 하지만, 첫 시작 때 남겨둔 영상을 다시 보거나 종종 느껴지는 스스로의 성장을 생각해보면 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연구의 낭만에 대해 나라는 사람이 얼마큼 무게를 두고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내가 실제로 그 낭만을 잘 실현할 능력이 있는지를 검증해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더불어 연구를 업으로 삼아 치열하게 살아가시는 주변 분들을 진심으로 동경하고 응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낭만적인 일이라 한들 그 낭만을 잃지 않기 위해 이겨내 하는 어려움은 분명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연구의 낭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낭만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는 경험 자체에 크게 감사합니다. 분명 이 생각과 경험도 아무나 흔히 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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