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졸업한 학부는 대학원 입학이 상대적으로 쉬운 곳입니다. 좋은 대학에 훌륭한 학업 능력을 갖춘 친구들이 많이 있다 보니 어쩌면 꽤나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그러나 학업능력과 연구능력에는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친구더라도 박사 과정 중에 박사를 받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는 길에 단순히 연구를 한다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당장 연구가 잘 맞는다는 확신을 갖기도 어렵고, 군대가 해결되지 않은 경우에는 전문연구요원 준비를 위한 시험도 따로 쳐야 하고, 해야 할 업무가 많아 신체적으로 힘들기도,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 정신적으로 괴롭기도 합니다.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박사 학위를 염두에 두고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꽤나 많은 비율이 석사 학위만 받거나 중간에 자퇴를 하여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박사를 받으신 선배들의 경우에도, 요즘은 박사학위 자체가 꽤 많은 것을 보장해 주던 시기가 지나서인지 크고 작은 후회를 하시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어디에서나 그렇겠지만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내가 그 오랜 기간 동안 경험하고 쌓아온 것들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항상 남의 떡이 더 커 보여서 그런지 스스로의 능력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박사학위 소지자가 많은 요즘이라 그렇게 느끼기가 더욱 쉬운 것 같아요.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과 주위 환경에 비추어 보았을 때 박사학위에 대한 제 나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박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 전문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박사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최소한의 존중을 보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설령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크게 좌절하거나 스스로를 깎아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 만약 박사를 받았다면 세상에 많은 지식 중 하나를 깊게 파보았다는 자부심을, 만약 박사가 아닌 다른 길을 가게 됐다면 세상에 할 건 참 많으니까 이제 보다 잘 맞는 길을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참 좋은 학교에서 참 멋지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박사 학위가 있던 없던 이미 충분히 멋있는 사람들인데 말이죠. 어쩌면 학문적인 탐구가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기 쉬운 이 좁은 학교 사회가 갖는 병폐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너무 소박한 것을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저 저와 그들이 이 세상에 각자의 색깔을 선명하게 펼치면서 한없이 짧은 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