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을 극복하는 걸까 괴물이 되어가는 걸까

2021.07.15

by 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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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있어 연구가 참 힘들고 버겁긴 하지만, 때때로 잘 풀려서 좋은 결과가 있는 날도 있습니다. 그 작은 순간들이 쌓여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꽤나 큰 칭찬과 격려를 받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동안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그런지 그 빛이 너무 밝고, 자극적이고, 지난날의 힘듦까지 다 보상해주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사실 그럴 수 없는데 말이죠.


감정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와 칭찬을 마주하면 제가 어려운 상황들에 대처를 잘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그래 혹독하게 힘들었으니 잘하는 거지'라는 합리화를 하더라고요. 그리고 냉철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잣대를 들이댔던 사람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저 또한 그 잣대를 다른 사람에게 들이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조금 무섭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 생각에 저의 과거는 없었으니까요.


문득 영화 '위플래시'가 떠올랐습니다. 결말에 대해 평이 많이 갈리는 영화인데, 저의 경우에는 굉장히 불쾌했던 영화입니다. 제가 바라본 주인공은 끝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삶의 많은 것을 희생해버린 괴물이었고, 정점에 올랐지만 지독하게 외롭고 차가운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이 주인공이 진정으로 바랐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결국 스스로가 중심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괴물이 되는 듯해도 자신의 능력이 성장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면 괜찮겠지만, 누군가는 저처럼 그 과정에서 무뎌져 가는 감정선이 더 소중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감정을 억누르면 보다 빠르고 높게 성장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성장은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학위 과정의 끝이 조금씩 다가오면서 스스로가 어떤 벽을 넘어서야만 만족스럽게 졸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에는 그 벽을 넘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벽을 넘은 이후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벽을 넘어서 순간에 괴물이 아닌 보다 단단해진 자신을 마주할 수 있길 바라며 말이죠. 학위를 끝냈을 때 제가 좋아했던 스스로의 모습이 많이 사라져 있다면 저는 너무 슬플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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