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그냥 하루하루 거창한 이유 없이 살아야 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아니, 사실 평생을 그래야만 하는지도 몰라요. 각자의 인생에 있어 그 이유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지, 애초에 운명처럼 정해진 소명을 타고난 사람은 없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는 저는 사실 황홀한 순간들, 감정적으로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들을 좇는 사람이에요. 그것에 거의 중독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러한 순간들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살아가는데 그렇게 거창한 감정이나 이유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훨씬 좋은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그리던 꿈의 학교였어요. 드라마 같은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고, 학부생활 4년을 정말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보냈습니다. 학업과 경험, 사람들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쪼개가며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휴학도 했었는데 학교 밖을 벗어나서 새로운 경험들을 이어가기 위함이었어요. 사실 뚜렷한 목표나 지향점은 없었습니다. 그저 배우고 싶었고 주어지는 기회들이 너무나도 감사했기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어요. 정말 다양한 방면으로 멋진 사람들을 만난 건 덤이었죠.
제가 그렇게 살았던 것은 복합적인 이유이긴 했습니다. 과분한 대학에 입학했다는 책임감,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엄청나게 많은 경험들로 저 스스로를 이끌었어요. '워커홀릭',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보이기 쉬웠지만, 사실 그런 느낌보다는 그냥 그게 좋았습니다. 그 순간순간 제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스스로가 '황홀'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어요. 그 황홀함을 위해 힘든 부분들 마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황홀에 비하면 그 고통쯤은 별거 아니었으니까요. 이런 게 사는 거라며 '평생을 이렇게 가슴 뛰게 살 순 없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더더욱 애썼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히도 4년간의 황홀함은 어느 순간 끝이 났습니다. 더 이상 앞뒤가 안 가리고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다 쏟아부을 만큼 매력적인 선택지는 제 눈앞에 보이지 않았어요. 대학생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끝나가기 때문이었는지, 너무 많은 것들을 경험해서 어지간히 강렬한 것이 아니면 자극받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역치가 올라간 탓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계속 강렬한 걸 좇으며 평생을 살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래야만 삶이고,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오랜 시간 꽤나 고통스러웠던 고민의 시간을 거치면서 저는 그렇게 커져가는 황홀함을 좇는 삶을 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저는 그럴 자신이 없더라고요. 스스로의 능력이 그렇게 커져만 가는 황홀을 좇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여전히 가슴이 미칠 듯이 설레도록 황홀한 일을 찾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가 오면 좋은 거고, 그러지 않아도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황홀함을 좇아 새로운 걸 찾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일들이 저를 설레게 하지 않아도 괜찮고, 강렬하게 저를 때리는 마약 같은 행복이 아니라 조금은 잔잔하게 음미할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 나가는 것도 꽤 괜찮은 삶이라고 믿습니다. 만약 그러한 즐거움조차 없는 하루였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일단 그 하루를 살아낸 것이고, 또 언젠가 즐거움은 찾아 올 테니까요. 거창한 이유나 목표가 없어도 그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참 멋있고, 의미 있고, 다행이고, 많은 애를 썼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렇게 황홀해도 괜찮을까?' 싶은 순간들이 선물처럼 찾아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