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합격이 취소됐다

2021.10.06

by 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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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랩 미팅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다행히 미팅은 잘 마무리된 듯했으나, 쏟아진 질문과 코멘트가 상당히 많아서 꽤 길고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미팅이었어요. 그래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팅을 끝내고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메일이 한 통 와있었습니다. 2주 정도 전에 서류를 지원해서 합격한 스타트업에서 온 메일이었어요. 그런데 제목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서류전형 결과를 안내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분명 지난주 즈음에 서류에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았는데 말이죠.


내용을 살펴보니 서류 전형 불합격 메일이었습니다. 이유인즉 제가 지원했던 부서에서 T/O 변동이 있었고, 그러면서 현시점에서 바로 투입 가능한 인재가 필요하게 되어 저의 합류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제가 바로 투입이 가능한지는 면접에서 판단해도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미 합격한 서류를 번복할 만큼 면접까지 필요한 비용이 아까웠던 것일까요? 뒷부분에는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인재상이 달라 함께하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위로의 내용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어이가 없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현시점에서 바로 투입할 수 없기 때문에 서류 합격이 취소된 건데 제 역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니...


안 그래도 소화할 내용이 많았던 랩 미팅 직후라 더 머리가 아팠습니다. 서류합격 직후 서울로 와서 면접을 보라고 했는데, 혹시 화상으로 진행은 어려울지를 물어봐서 그런 건가? 서류상에서 보이는 나의 능력이나 기대치가 면접도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부족한가? 부서를 바꾸어 다시 지원한다는 메일을 보내 봐야 하나? 나 졸업하고 회사를 갈 수나 있을까? 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복잡하고도 갑갑한 생각으로 뒤범벅된 마음이 도저히 다스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우선 몸이 피곤했으니 억지로나마 잠을 청했고, 다행히 힘들었던 하루를 그렇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자고 일어나서 회복된 몸상태 덕분인지, 대학원에서 두드려 맞으며 강해진 멘탈 덕분인지 보다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했던 연구가 해당 스타트업에서 하는 직무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는 않았기에, 요구사항이 올라갔을 때에 그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웠던 것은 분명 납득할 만한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갑자기 합격된 서류가 취소된 점. 합격 취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불합격인듯한 내용을 보내는 담당자의 메일. 당장 다른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은 꽤나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싫은 부분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신경 써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다른 회사를 찾는 일 단 하나더라고요. 합격 취소와 관련된 일은 제가 아무리 화내고 억울해해도 이미 지나갔을뿐더러, 제가 애써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회사를 찾는 일에만 마음을 쓰기로 결심했고, 그 일도 오늘 당장 해야 하는 대학원생으로서의 일들을 먼저 마무리한 후에 하자고 정했습니다. 그렇게 일과시간을 정신없이 보낸 후, 퇴근하기 전 CV를 다시 정리하여 다른 회사들에 메일을 보내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분명 화가 났습니다. 합격되었던 서류가 갑자기 취소되면 그 누구의 기분이 좋을까요. 하지만 단순히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나아가 복수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격언처럼, 억울하면 마음을 다잡고 더 좋은 환경이자 제 가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끝내 해내는 것이 최선일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회사를 가지 않을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회사에 지원하는 입장에서 제가 어필해야 할 부분이 보다 명확해졌다는 좋은 점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제 다음 스텝이 어디가 될지 다시 불투명해져 조금 속상하긴 해도, 원래 세상에는 뜻대로 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요.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다음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다시는 합격된 서류가 취소되는 일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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