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엔지니어로서의 자질이 있을까

2021.10.14

by 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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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이 다가오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 어디 가서 엔지니어라고 얘기해도 괜찮은 건가?' 단순히 어느 학교를 나왔거나 어떤 학과를 전공했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저라는 사람의 성향과 기질이 엔지니어라는 직업에 걸맞은 것인지, 만약 걸맞지 않다면 최소한 그 요건들에 부합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다른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불필요하게 깊은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꽤나 오랫동안 고민해온 저에게는 엔지니어로서의 정체성이 스스로 납득되어야만 하는 것이 꽤나 중요한 문제더라고요.


엔지니어는 공학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테크니션인 기술자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공학자와 기술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두 직업 간의 우위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고 그저 제가 느끼는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공학자는 기술자와 달리 반드시 학문적인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두 직군 다 어떠한 문제를 접하고 이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할 텐데, 엔지니어는 수학과 과학을 바탕으로 한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잘못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경험이 많으신 분들께서는 직관에 의존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그 직관도 '그냥'이 아니라 반복되어온 탄탄한 학문적 논리를 바탕으로 합니다. 대표적으로 현업에 오래 종사하신 엔지니어 분들이나 연구라는 과정을 통해 꽤 깊은 논리를 한번 만들어 내 보신 박사님들이 날카로운 직관을 갖고 계실 가능성이 높죠.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이 논리는 꽤나 오랜 시간 축적되어 왔고, 때문에 공대에 오면 배워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어마 무시하게 많은 양의 전공과목들이 요구하는 것을 단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당연하게도 '논리'일 거예요. 아마 공학을 전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때 수학 과학을 접하며 이러한 논리를 꽤나 신기해하고 즐거워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람마다 이 논리를 습득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스스로 엔지니어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누군가는 추상적인 논리체계를 촘촘하게 쭈욱 쌓고 난 후에 실제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와닿는 사람이 있을 거고, 누군가는 반대로 최소한의 단순한 논리만을 가지고 우선 실제 문제에 부딪혀 본 후 그것에서 부족한 논리를 메우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꽤 후자에 가깝습니다. 실제 눈앞에서 무엇인가 만들어내고 벌어지는 것에 관심이 더 많기도 하고, 참을성과 능력이 썩 부족하여 머릿속에서 논리를 짜임새 있게 충분히 전개하는 것을 잘하지는 못 하거든요. 그렇다고 논리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분명 수학과 과학 그리고 제가 배우는 기계공학의 논리를 좋아해요. 실제 현실에서의 현상을 치열하게 관찰하여 만들어낸 일종의 예술작품이라고까지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타고나기를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사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한계를 참 많이 느낍니다. 조금 더 깊게 고민하고 생각해서 논리를 다듬어야 하는데 그 호흡이 그렇게 길지가 않달까요. 어쩌면 제가 논리 자체를 완성해가는 즐거움보다는, 논리가 얼마의 깊이를 가지는가 와는 관계없이 그 논리를 바탕으로 무엇인가 실제 해내는 것을 더 즐거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당연히 어떠한 방식으로든 논리를 습득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라고도 생각하지만, 제가 대학원에 있다 보니 이 방식의 한계를 많이 느낍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연구가 학계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가 가장 중요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은 것 남들보다 나은 점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물론 실제로 부딪쳐 가면서도 논리를 이해하고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꽤나 많은 시간을 쓰지 않을 수 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논리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학원을 벗어나 현장으로 나간다고 해도 이런 방식은 문제가 될 가능성이 꽤나 높다고 생각합니다. 기계공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제가 제시한 계산을 비롯한 논리가 틀리면 실제 돌아가는 장비가 망가지거나 심지어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실제 적용하기 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논리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대학원에서 배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런 잔실수가 많은 저라서 두려움과 걱정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정말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20대에 감사하게도 과분하다 싶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고, 각자가 보여주는 엔지니어로서의 첨예한 능력과 열정들을 보며 '나는 저 정도로 논리가 날카롭지는 않은데', '저런 논리를 만들어 내려면 너무 버거워 정도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저 정도로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과 열정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라는 부끄러운 반성을 많이 마주하다 보니 기준선이 올라갔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사회에 나갔을 때도 충분히 괜찮은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완벽하고 뭐든지 잘하고 싶은 마음에 지레 겁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쨌든 우선은 엔지니어의 길을 걸어 보고자 합니다. 논리가 보다 첨예해야 하는 학계에서의 연구를 우선 접했다 보니 제가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여러 모습의 엔지니어가 있는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단지 저는 추상적인 것보다는 실질적인 것에 더 잘 반응하고 강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요. 당연히 항상 스스로가 완벽하지 않고 부족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겸허함은 갖추어야겠지만, 그렇다고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해서는 안 되는 결격 사유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스스로에게 엔지니어로서의 자질이 있는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믿고 앞으로 나아가 보려고요. 물론 가는 길이 쉬울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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