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8
저는 현재 지금의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이 참 부끄럽습니다. 대학원생은 연구를 하는 사람인데 저는 연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사실 제가 연구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제 자신에게 말한다고 한들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괴로워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연구라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학위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연구는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깊이 탐구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중요한 자질이 탐구욕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과학과 공학에 대한 탐구욕이 그다지 크지 않은 사람입니다. 대학원에 오기 전부터 그랬어요.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은 욕심은 많지만, 특정 학문이 발전해 온 과정이나 학문 자체가 가지는 논리, 혹은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기여하는 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에게 있어 과학과 공학은 학문보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서의 의미가 강했죠. 그 언어를 보다 능숙하게 다루고 싶다는 관점에서 대학원을 진학했었는데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대학원은 연구를 통해 탐구를 하는 곳이니까요. 과학과 공학을 언어로써 잘 다루고 싶었으면 사회에서 부딪치며 그 쓸모를 찾아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연구로 대변되는 탐구 이외의 목적을 갖고 대학원에 오는 것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롯이 사회적인 명예와 가치만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또 연구를 하나의 일로써 생각하고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꽤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할 겁니다. 저 또한 대학원에서 얻는 학위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여기까지 대학원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행하고 있는 일의 본질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삶이 부끄럽게 느껴지거든요. 연구의 본질은 탐구인데 탐구가 하기 싫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라 생각해요. 본질에 어긋난 행위를 반복하면서 연구를 한다고 믿고, 세상에서 기대를 받는 것 자체가 연구와 연구자들에 대한 기만이 아닐까요? 또 제가 지금 전념할 수 없는 이 길을 누군가는 정말 간절히 갈망하였을 겁니다. 세상 모두가 원하는 기회를 얻을 수 없기에 제가 누군가의 기회를 가져야만 했을 텐데, 그들에게 연구자로서 크게 떳떳할 수 없다는 게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더불어 함께 하는 다른 보상들을 얻기 위함이라고 한들, 본질을 행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보다는 부족한 원동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한 원동력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요? 저는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잘 해내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학위가 끝나갈수록 연구가 그런 일이기를 바라고 애써보았지만 끝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생활을 함께하는 저의 룸메이트를 비롯해서 연구실에 많은 사람들은 저와는 달리 훌륭한 탐구욕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들이 보여주는 연구를 좋아하는 모습은 저와 거리가 너무나도 멉니다.
당장 다른 길이 보이지 않고 두렵다는 이유로 대학원을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아닌 것을 조금이라도 직감했다면 보다 빨리 그만두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부끄러움이 듭니다. 물론 과거의 저로서는 그때마다의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는 치열하게 고민하며 끝내 연구의 길을 선택했을 테고, 대학원에서는 눈앞에 닥친 당장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허덕였을 겁니다. 어쩌면 학위과정을 끝내 가는 지금에서야 이 고뇌를 마주하는 것이, 대학원 진학이 꽤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닫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제 자신에게 가혹한 말만 남긴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러한 부채감과 책임감 때문에라도 분명 저는 최선을 다해 끝을 보기 직전에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힘든 경험을 끝내 마무리해 가는 제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지금껏 해온 경험들이 제 삶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 믿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끄러움은 꼭 남겨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솔직한 저의 모습을 외면했던 선택을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