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잘하지 못해 괴로워한 나에게

2021.11.23

by 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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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구를 잘하고 싶을 거예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통해 문제를 찾고, 실험도 착착 진행되어 좋은 논문이라는 결과를 내고, 나아가 훌륭한 예비 학자로 인정받아 장학금이나 상들도 수여할 수 있기를 기대할 겁니다. 저 또한 그렇게 연구를 잘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애써 보겠다 다짐했던 학생이었습니다. 이 생각의 기저에는 대학원생은 대학원에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는 명제가 있었는데, 아마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제가 2년 정도 경험해본 연구라는 행위는 그렇게 만만하거나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와 배경지식은 물론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얘기할 수 있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대학원생은 연구를 해야 한다는 명제가 반은 맞고 반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를 하는 것이 목표이긴 하지만 그러기 전에는 배워야 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이야기를 나눴던 대부분의 교수님들도 대학원 과정을 연구 성과를 내기보다는 트레이닝의 과정으로 보셨습니다. 지도 학생이 처음부터 잘하리라는 기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여러 가지 실수를 거치며 배우는 것에 대부분 꽤나 관대한 편이십니다. 하지만 연구를 하는 프로로서 성장해야 하기에 트레이닝의 결과에 대한 기준이 단순히 배우기만 해도 되는 학생으로서의 수준에 맞추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냥 듣기 좋은 소리만을 반복할 수는 없죠. 더불어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는 대학원의 특성까지 고려를 해본다면 높은 훈련 결과를 위해 이루어지는 피드백들이 상당히 밀도 있게 반복됩니다.


물론 소수의 천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재가 아니었기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드백을 거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꽤 많은 상처를 받으며 스스로의 무력함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강도가 꽤나 아프게 다가왔던 이유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였던 것 같아요. 연구를 잘하기 위해 대학원에 왔는데 결과는 볼품없고 끝없이 질타만 받으니 힘이 점점 빠졌습니다. 격려를 받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 격려가 와닿지 않아서였는지, 저의 기준이 너무 높아서였는지, 피드백이 훨씬 더 많이 와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그리 큰 힘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었죠.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연구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참 많이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학생이 아닌 연구자로서의 잣대로 본다면 한없이 부족하고 아쉽고 아파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걸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괴롭히기만 했던 것 같아요. 연구를 잘하지는 못했어도 연구를 잘하기 위해 배우는 학습의 과정은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괴롭고 힘들고 아프긴 했어도 어쨌든 조금씩 변하며 배우고 있었고,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문 채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종종 대학원에서 자행되는 비도덕적이고 비합리적인 피드백들마저 정당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동안 피드백을 수용하느라 힘들었던 제 감정들마저도 냉철하게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채찍질할 생각도 없어요. 단지 연구를 대할 때는 내가 연구자로서 대학원에 온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배우고 훈련받아야 할 학생으로서 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랬다면 그동안의 상처들이 좀 더 많이 회복될 수 있지 않았을까, 나 자신을 너무 몰아가지는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을 과거에 저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 시간을 거쳐 참 훌륭하게 성장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저는 지금도 연구를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처음 대학원에 들어왔을 때의 저보다야 훨씬 더 나아지긴 했겠지만 여전히 연구를 잘한다고 이야기하기엔 부족한 점과 배울 것 투성이인 학생일 뿐이에요. 하지만 대학원이 연구를 배우기 위한, 심지어 그저 경험해보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참 많이 배웠고 충분히 성공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학위 기간 동안 마주칠 어려움들에 대해서는 다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조금은 편히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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