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과정을 마무리하며

2021. 12. 15

by 지노

몇 년 전에 굿피플이라는 예능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똑똑하고 멋진 사람들이 로펌에 인턴으로 참여하여 마주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자기반성과 더불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줬던 기억이 있어요. 참 인상 깊었던 문장들이 많았는데 임현서라는 인턴 분께서 최종 면접 때 '본인이 크게 성장했다고 느낀 부분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조립했던 논리들을 아무리 뜯어봐도 의미 있는 결론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벽 4시쯤 됐을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노래를 들어 보기로 했다. 두 노래가 똑같이 들릴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를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두 곡이 정말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지만, 내가 남들이 잠든 시간 사무실에 남아 답이 보이지 않는 그 순간들을 견디지 않고 포기했다면 그 간단한 답이라도 얻을 수 있었을까? 다른 인턴들과 이야기해보니 의외로 내가 생각했던 해답은 손쉽게들 생각해냈던 것 같지만 누구에게 쉬운 해답이더라도 나는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 앞의 도전들, 크고 작은 어려움에 맞서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내게는 그렇게 해서 찾았던 그때그때의 해결책, 해답, 결과보다는 무던히 포기하지 않고 견디고 견뎠던 그 시간들이 변함없는 단 하나의 해답이었던 것이다.'


저에겐 석사과정이, 대학원 생활이 참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임현서 님처럼 날밤을 지새웠던 적이 많았던 것도, 정말 대단한 성과를 내기 위해 엄청나게 높은 기준을 잡고 미친 듯이 연구에 몰두했던 것도 아니었어요. 심지어 박사도 아니고 석사과정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이 지나면 받는다고 얘기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마주해야 했던 감정들은 저에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들은 흘릴 수 있어 저만큼 아파하지 않을 수 있기에 다소 무던한 시간일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저는 그 시간을 참 힘들게 견뎌야 했었습니다. 심리 상담도 받아보고, 제 성격과 기질에 대한 고민도 해보고, 과거와 지금 순간에 내린 선택들에 대해 깊게 반추해 보기도 하고, 그저 흘려버리려는 동시에 눈앞에 닥친 일들에만 집중하려 애써보기도 했었죠. 순간순간을 위한 답들이 있었음에도 매번 아픈 감정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감정 조절이든 연구 능력이든 부족한 스스로를 마주해야 하는 것이 답답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잠시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으면 되지 않느냐, 남들에게 참 간단하게 보이는 이 문제가 저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웠거든요.


그동안 참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시간을 그렇게 견뎌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의 석사학위 심사가 끝났습니다. 발표를 참 잘했다는 감사한 격려와 함께 이제 저도 곧 석사학위를 가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게 제 삶에 어떤 의미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걸 생각할 에너지가 별로 남아 있지 않고 어쩌면 앞으로도 별로 생각 안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저 견뎌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임현서 님처럼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견뎌냄이 유일한 해답임을 알고, 꽤나 길었던 기간 동안 그 답을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삶에서 쏟아질 수많은 문제들을 마주하면 무던히 포기하지 않고 견디고 견뎌내는 시간들로 그 문제들에 대한 답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생각보다 크게 기쁘거나 후련한 마음이 들지는 않지만, 조금 덤덤해도 단단한 이 끝과 깨달음을 마주하였으니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이렇게 끝이 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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