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안 다녔던 대학교를 떠나면서

2021. 12. 31

by 지노

학교를 떠납니다. 약 8년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해왔고, 이제 두 번째 졸업을 마주한 끝에 사회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꽤나 길었던 여정의 마침표라고 할 수 있는 석사학위 심사를 끝으로 학교와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2주 조금 넘게 주어졌었어요. 12월의 첫 시작에는 학위 심사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 기간과 이별의 과정에 대해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위 심사를 마치고 막상 주위 사람들을 만나며 마음을 정리하다 보니 꽤나 뒤숭숭해지며, 8년에 가까운 시간을 2주 만에 마무리하는 건 무리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물론 시간이 더 있었다고 해도 그 오묘한 마음이 쉬이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요. 그만큼 학교에 참 많은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얽혀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이 학교에서 20대의 대부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실력이나 결과보다는 잠재력을 더 크게 인정받아 합격한 이곳에서의 생활은 저에게 더할 나위 없이 황홀했어요. 실력은 물론이고 각자의 뚜렷하고도 멋진 개성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어도 꽤나 유의미하고 복잡한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학교가 제 자신을 발견하고 발현할 수 있도록 무대이자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 것이 정말 감사하고도 즐거웠습니다. 무엇인가 한 가지 엄청나게 뚜렷하고도 인상 깊은 족적을 남기거나 엄청난 성과를 낸 학생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색깔과 이야기를 꾹꾹 힘주어 써나가며 경험들에 몰두하던, 이상하리만치 행복해하는 학생이었죠. 대학에 입학한 순간부터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모두 다 해보는 것이 제가 옳다고 믿는 방향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경험한다는 건 탁월함과는 거리가 다소 멀었습니다. 꾸준하지는 않았어도 조금씩 남겼던 그때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학업적 성취, 진로를 정하고 나아가는 과정, 심지어 인간적인 매력까지도 무언가를 뚜렷하게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짙게 묻어 있어요. 그토록 남부럽지 않게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를 경험했어도 저는 늘 무언가 한 가지를 또렷이 잘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그 한 가지를 마주하거나 정하기는 쉽지 않았고, 결국 학부기간 내내 이것저것 욕심을 부려가며 적당한 깊이만의 경험들을 쌓은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을 선택했지 않았나 싶어요. 꽤나 여러 경험을 하고도 결국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가는 길을 선택했던 것은 무엇이라도 하나 잘하는 걸 만들고자 했던 욕심이었습니다.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며 다짐 겸 찍었던 영상에서 말했듯, 한 가지에 뚜렷하게 재능이나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동안 오래 해왔던 것을 해도 크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물론 학위 기간이 쉽지는 않았고 그렇게까지 탁월한 결과를 낸 것 같지도 않습니다. 연구라는 행위를 생각만큼 즐겁게 배우며 행하지도 못했고요. 아쉽지만 대학원에서도 탁월해지고자 하는 것의 뚜렷한 답을 찾지는 못한 셈이죠.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감흥을 가지고 정든 학교를 떠나는 게 조금은 찝찝하고도 섭섭합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제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갈 때입니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 사회 초년생으로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살아가야 되는 게 설레면서도 두렵습니다. 이제 앞으로 저한테 어떤 경험들이 펼쳐질까요? 제가 진심을 다해 탁월해지고 싶은 어떤 한 가지를 찾을 수 있을까요? 과분하게 느껴질 만큼 참 고마웠던 저의 모교 같은 곳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당장은 답을 얻기 힘들 수많은 질문과 생각들을 마음 한편에 품은 채 조금씩 나아가 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칠 때마다 종종 학교에서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참 고마웠던 이 학교에서의 인연과 추억들이 앞으로의 제 삶에서 큰 버팀목이자 잔잔한 기쁨이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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