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보고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날

2021. 12. 21

by 지노

석사 졸업 준비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 중의 하나는 취업 준비를 함께 진행해야 했었다는 것입니다. 지원했던 회사의 서류 접수와 면접일자가 졸업준비 기간과 겹쳐 일정이 다소 부담스러웠어요. 그렇게 진행된 서류평가와 여러 번의 온라인 면접에서 다행히도 좋은 결과를 받아 최종 면접을 보기 위해 회사에 직접 가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회사가 제주도에 있어 비행기를 탔어야 했는데 면접 당일 날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해 결항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졸업 관련된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빡빡한 일정 중의 결항이었다면 정신을 못 차렸을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결항에 일정을 수정하느라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며 세상만사 역시나 뜻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였습니다.


이후 감사히도 사측에서 일정을 변경해 주어 오늘 면접을 보고 왔습니다. 아직 연구실에서 해야 할 일이 좀 남아있어 당일치기로 갔다 온 일정이었지만, 몇 년 만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방문하는 건 졸업 선물로 느껴질 만한 기분 전환이었습니다. 면접 때문에 방문하긴 했지만 공항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다 보니 왠지 저도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평소 고기를 좋아해서 흑돼지를 맛있게 먹고, 잠시 시간이 남아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사람 구경도 하고,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제주 시내도 구경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짧은 여행이 너무 즐거웠던 탓일까요? 면접은 망했습니다. 제가 연구했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일 줄 알았는데, 그것을 크게 벗어나 특정한 문제를 푸는 식으로 면접이 진행된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더불어 크게 두 파트로 진행된 면접의 순서가 매일에 안내된 것과 반대로 진행되어 당황한 것도 한몫을 했어요. 그러나 저는 면접을 보는 입장이었고 그러한 요소들은 제가 충분히 대비했어야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더불어 핑계를 대기에는 제가 부족한 것이 너무나도 자명했어요. 면접에서 제시하는 문제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기술적인 해결 방안을 빠르게 대답하지 못했거든요. 물론 학위과정 중에 연구해본 분야가 맞았거나 긴장을 조금 덜 했다면 매끄럽게 답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것들을 생각할수록 부끄러움이 커지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연구 분야가 달랐어도 기계공학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했다면 분명 대답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저는 면접에서 요구하는 기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에 많이 부족했고,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면접관분들께서는 감사히도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지만,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저는 갑갑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부 때와 대학원 때, 아니 어쩌면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을 통틀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크게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문제를 맞히지 못하거나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아도, 연구를 진행하며 연구와 제가 잘 맞는 것 같지 않다고 느껴도 아쉽고 슬픈 정도였지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적은 없었거든요. 처음으로 마주했던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한 분노의 원인은 일종의 자존심이기도 했지만, 보다 자세히는 제가 생각하기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지식을 스스로가 갖추지 못한 것 같다는 사실에서 오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괜찮다거나 충분히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남들이 말해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제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으니까요. 제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석사 학위 소지자로서 갖게 되는 일종의 권리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대로라면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못하는 무책임한 사람이 될 것 같았거든요.


어쩌면 지난번 글에서 스스로가 엔지니어로서의 자격이 있는지를 고민했던 것의 연장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동안 평가받을 기회가 없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저는 저의 부족함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지 치열하게 애써서 채워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을 뿐이죠. 물론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 어떠한 형태의 업을 가지고 살아갈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이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8년 가까이 배워온 기계공학이 그 중심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을 거고, 특히나 당분간은 전공을 살린 직업을 가져보겠다고 결심했으니 이는 꽤나 부끄럽고 치명적인 결점이라 생각합니다.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회사의 합격 여부는 이미 제 손을 떠났으니 어쩔 수 없어도 부족한 기본기를 채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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