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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Jan 31. 2022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은 욕심내지 않을래

합격 후 스트레스

  회사에 합격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대학원에서 해온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될 만한 곳으로 가게 되었어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과 고민들이 치열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몇 달 동안의 취업 준비를 각오하기도 했었는데, 스스로도 별로 원하지 않는 꽤나 긴 공백기는 갖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대학원과 취업이라는 큼직한 단락들이 마무리되어 여유로운 시기가 분명한데 몸과 마음은 계속 바쁘게 움직여왔습니다. 스스로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거나 회사에서 면접을 보면서 느꼈던 엔지니어로서의 한계가 계속해서 압박으로 다가왔거든요. 편히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실컷 즐겨도 괜찮을 텐데 저는 전공책을 펴놓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 전공 지식들이 있어 나름의 뿌듯함은 있었지만 순전히 즐거워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지식을 배우는 것 자체를 행복해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지금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회사에 들어가 맡은 바를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심지어 이렇게 공부를 해도 여전히 해야 할 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압박으로 다가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이토록 길게 여유로운 시기가 쉽게 오지 않는 법인데 또 그 시기를 마냥 즐기지 못하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낸다는 게 답답하기도 했고요.


  숨을 쉬기가 불편했습니다. 또다시 재작년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 같았어요. 다행히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오지 않았지만 제가 꽤나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건 분명했죠. 원인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습니다. 대학원 생활, 어쩌면 살아오는 내내 저를 지배해왔고 원동력이 되어준 생각이었죠. 분명 많은 것들을 이뤄낼 수 있었기에 즐거웠지만 항상 더 많은 것들이 보였고, 저는 그것들을 얻기 위한 욕심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커진 욕심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대학원 생활이 괴로웠고 많은 것들을 잘 마무리한 지금의 시점에서도 이토록 힘들어하고 있는 것일 테죠. 이 속도로, 혹은 이보다 빠른 속도로 살아간다면 제 스스로가 망가질 것 같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스스로가 크게 성공하는 것을,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을 진심으로 포기했으면 좋겠다고 절규했던 과거의 목소리도 들렸어요.


  제가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건 사람들을 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타인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좋은 반응을 들을 때, 누군가와의 깊은 유대감 속에서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행복합니다. 그래서 의외로 사실 사회적 성공이나 하는 분야에서의 지대한 공헌만에는 그렇게까지 큰 관심이 없어요. 단지 실질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고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저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좋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실제로 그동안 저의 공학자로서나 사회적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만 지켜낼 수 있는 관계들이 있음을 느끼기도 했고, 그러한 경험이 또 하나의 원동력이자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능력을 훨씬 더 크게 키우고자 애쓰는 걸 그만두려 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욕심이 분명하니까요. 제가 즐거워하지 않는데 맹목적으로 지금보다 더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엄청나게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대신에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만족하며 살아보려고 해요. 부족한 건 부족한 대로 당장에 할 수 없는 건 또 그런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려움과 압박들 속에서 더 잘하라고 제 자신을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위로해줄 수 있는 선택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렇게 하면 부족해서 실수하고 잘못하는 순간들에 더 많이 노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맡은 바를 끝까지 해내고자 애쓸 거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어요. 물질적으로도 크게 풍요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많이 부족하지는 않게, 가끔 사람들에게 밥 한 끼와 커피 한 잔 정도 살 수 있는 능력은 갖추었다 생각합니다. 이런 걸 보면 지금까지 키워온 능력들을 잘 유지하기만 해도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하고 저의 인간관계를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지금부터는 스스로를 그만 괴롭히고 제 자신이 충분하다고 믿고 만족하며 살아가 보려고 합니다. 열심히는 살고 싶지만 단순히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쥐어짜 내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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