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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Feb 07. 2022

취업 후 자취방을 구하며 든 생각들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출근하게 될 회사가 본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자취방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의 대부분을 지방에서만 지냈기에 수도권에 방을 구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도 했어요. 올라가기 전 부동산에 전화를 하고, 당일 동네에 도착하여 공인중개사 분과 함께 거의 열 군데 가까운 방을 돌아다니며, 고민 끝에 방 한 군데를 정해 계약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방을 둘러보며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고, 공인중개사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자취방은 엄연히 한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의식주 중 하나이죠. 그러나 필수라고 해서 그것이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독립을 결심하는 순간에는 이 공간을 찾아 헤매야만 하니까요. 이번에 그 과정을 몸소 부딪치며 주거공간의 중요성과 무게감을 마주했습니다. 물론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당히 비싼 가격임에도 제가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공간들을 접하며, 그래도 나름 열심히 돈을 모으고 준비해왔던 저의 노력이 원하는 주거환경을 누리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불어 그런 공간을 찾아 저를 낳아 길러주셨던 부모님이 존경스러워지기도 했어요. 시대와 관계없이 한 가족이 쉬며 살아갈 공간을 마련한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이고 어려운 일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방을 구하고 본가로 돌아가기 전에는 한 대학 동기의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방을 구한 곳과 비교적 가까운 동네인데 개발이 상대적으로 최근에 이루어져 신축 건물들이 많이 있는 동네였어요. 친구는 꽤나 많은 돈을 들여 깔끔한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었고, 그런 공간에서 살아가는 친구가 부러우면서도 대단해 보였습니다. 하필 상대적으로 좁고 노후한 곳들을 하루 종일 둘러보고 온 탓이었을까요? 절망할 정도의 좌절감을 느낀 것은 아니지만 묘한 박탈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이제 막 사회로 나온 저의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런 감정은 과분한 욕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어요. 더불어 오랜만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행히도 부정적인 감정이 금세 잊혔습니다.


  꽤나 정신없었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며 그동안 참 감사하고도 편한 삶을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본가나 기숙사에 머무를 수 있었기에 주거환경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나아가 저의 성장에만, 대학원 생활에만 집중하던 시간들에 가려져 있던 현실적인 고민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듯했습니다. 앞으로는 무엇을 먹고 행할지를 스스로 오롯이 결정하는 시간들이 많아질 거고, 제가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을 가꾸는 것도 온전히 저의 몫이 될 테니까요. 당장 말끔한 공간에 살고 있는 친구와 똑같은 일상을 꾸리는 건 어렵겠지만, 여러 공간과 생활을 경험하고 고민해 보며 조금씩 제 취향을 만들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부터 해서 넘어야 할 산들이 꽤 많아 보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니 이것도 나름대로 즐겁게 경험해 보려고 합니다.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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