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연구 주제를 잡아 이것저것 해 보고 있는데, 제가 주제를 찾아 나가며 느꼈던 어려움과 노하우를 한번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기록의 의도는 다른 분들에게 꿀팁을 전수하기 위함 보다는, 나중에 제가 봤을 때 지금의 제가 얼마나 미숙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 훨씬 더 큽니다 ㅋㅋ 저는 이제야 한 학기가 지난 연구의 맛을 아주 조금씩 보기 시작한 나부랭이지만, 어쨌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저도 정리하면서 많이 배울 게 분명하니까요. 아,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제가 지금부터 말하려는 게 절대 정답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우선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거라도 좋아요. '아이언맨처럼 날아다니는 착용형 로봇을 만들고 싶다'라든지, '진짜 손처럼 느껴지는 의수를 만들고 싶다'도 좋아요. 최대한 멋있고, 내가 궁금하고, 해결해 보고 싶은 이상향을 마음껏 그려봅니다.
그렇게 꿈을 꾸었다면 이제 현실로 돌아와야겠죠 ㅋㅋㅋ 실제 연구로써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는 한 건지,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논리적으로 잘 정의할 수 있는지, 누군가 그 문제를 풀어 오고 있다면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겁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봐야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논문을 읽어야 합니다. 결국 논문이라는 게 기존의 분야에서 중요시해왔던 문제들을 정리하고, 그것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저자가 새롭게 발견한 문제를 정의하여, 나름의 문제 해결 방법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논문을 정말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많이'의 기준은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대략 100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내용을 언제 100편 씩이나 읽고 있냐'는 생각이 초반에는 들었는데, 처음에야 논문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한 두 번 정독하지 나중에 가면 abstract, introduction, result, conclusion 정도만 정독하고, method는 스윽 읽어서 요지를 파악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시간이 조금 줄어들긴 합니다. 여전히 많이 걸리긴 하지만요.
이렇게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한 100편 정도 읽고 나면 내 꿈과 관련 있는 그 분야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상세한 문제들이 뭔지 대충 정리가 됩니다. 이제 다시 한번 자신의 꿈, 원대한 목표를 생각해 봅니다. 이때쯤이면 읽었던 논문들을 바탕으로 꿈이 훨씬 많이 정제되어 있고 논리적으로 성숙한 문장이 되어 있을 거예요. 그 문장을 바탕으로 앞서 정리한 상세한 문제들 중에서 그 문장을 해결하기 위해 적합해 보이는 문제를 고릅니다. 문제의 범위를 좁히는 거죠. 그렇게 범위가 좁아지면 그와 관련된 논문들을 다시 보고 과거 및 최신의 흐름을 추적합니다. 그러다 보면 기존의 보다 다양한 해결 방법들을 알게 되고 그 지식이 충분히 쌓이게 될 겁니다. 하지만 아마 문제의 범위를 좁힌다고 해도 한 번에 좋은 영감을 얻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때문에 좁아진 문제에 대해 충분히 탐색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빠져나와 다른 문제를 정의하고 좁혀 들어가는 과정을 반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논문을 읽고 문제를 정리하고 문제를 좁혀서 다시 논문을 읽는 방법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왜 그 꿈이 현실이 되지 않았을까요? 기존의 문제들이 놓친 부분은 무엇일까요? 만약 논리적으로 충분히 좁아진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다면 이제 둘 중 하나입니다. 남들이 놓쳤던 블루오션이거나, 사실은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레드오션이거나. 머리로만은 알 수 없겠죠? 아무리 논문 조사를 해 봐도 새롭게 정의된 문제의 결과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그 수준으로 문제가 정의가 됐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검증을 하면 됩니다.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되는 거죠. 만약 본격적인 실험에 앞서 예비시험을 돌려봤는데 결과가 예상한 대로 나왔다? 그러면 정말 문제를 잘 정의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구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좋은 문제들은 기존 논문들의 future work에는 없습니다. 좋은 문제였다면 저자가 이미 풀었거나 풀고 있는 중일 테니까요. 때문에 높디높은 이상을 그려보고 현실을 파악한 후에 그 차이를 메꾸고자 접근하는 방식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그렇게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비약 있으면 안 되고, 누군가 시도했던 방법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도 안됩니다. 좋은 연구주제는 새로운 접근방식에서 의미 있는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정말 많은 논문을 읽으면서 문제를 정의한 배경과 논리적 흐름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저의 부끄러운 깨달음을 정리해 보았는데요, 적고 나니 제가 지금 잡은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앞으로 찾아야 할 논문의 주제가 머릿속에 막 떠오르고 있습니다 ㅋㅋ 제가 앞으로 논리적으로 잘 갖추어진 문제를 정의해서 실험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나아가 미래의 제가 이 글을 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지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됩니다. 만약 부족하다면 빨리 실패해야죠. 빨리 실패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그때 느낀 점을 또 이렇게 남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