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기

2020.07.21

by 지노

※오늘의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연구라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기혐오를 동반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모든 일이 그러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연구에서는 특히나 그게 두드러지는 거 같아요. 좋은 연구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 위해 수많은 논문을 보게 되고, 훌륭한 연구들 속에서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깎아 나가야만 합니다. 그 과정을 간신히 끝내고 나면 아이디어를 검증해 보아야 하는데, 그 검증의 결과가 얼마나 유의미할지 감조차 안 잡히는 경우가 많죠. 이게 연구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길을 걸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난 왜 이거밖에 못하지?', '오늘은 왜 집중이 잘 안될까?' 같은 끝없는 물음을, 지나쳐 버리면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아마 이 모든 것이 잘하고 싶어서, 조금 더 정확히는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어서 생긴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과의 비교에서 벗어나면 좀 나아지느냐. 그렇지도 않은 거 같아요 ㅋㅋ 여전히 잘하고 싶으니까요. 이전의 나보다 나아지고 싶고 성장하고 싶다는 향상심은 이렇게 되려 스스로의 목을 조일 때가 있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죠.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득, 사실 잘할 필요조차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이 짧은 생 무언가를 아득바득 잘하기 위해서만 태어난 것은 아닐 테니까요.


삶을 이루는 요소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직업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퇴근 후 개운한 샤워, 온몸에 땀을 흘리게 만드는 턱걸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 실없이 웃으며 보는 유튜브 영상 등 우리는 많은 감정을 만끽하며 각자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분명 직업적인 성장이 그것의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가끔 그 부분이 엉킬 때는 숨을 고르기 위해 시야를 잠시 삶의 다른 곳으로 돌려도 좋은 거 같아요. 그곳에서 숨을 충분히 고르고, 차분해지고, 괜찮아졌을 때 다시금 그 매듭을 풀어보고자 애쓰는 것이 보다 풍요로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단순히 무언가를 잘하고 성취하기 위해서만 태어난 것은 분명 아닐 테니까요. 결코 한 단어로, 한 문장으로 내뱉을 수 없는 복잡한 무언가를 위해 우리의 삶은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저만의 무언가를 위해 지금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거니까요. 연구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굉장히 복잡한 무엇인가 말이죠.


어쨌든 저는 그래요. 나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채찍질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만 살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 복잡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조금은, 정말 아주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숨을 깊게 쉬면, 삶의 한 부분인 그러한 성장도 자연스럽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러니까, 여전히 부족한 게 많고 불안한 저이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아 봐야겠습니다. 제가 저를 너무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좋은 연구 주제를 찾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