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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Apr 04. 2022

비난과 비판의 경계선이 참 어렵다

비난과 비판

  인간관계에 섬세하다는 것은 나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많이 신경 쓰고 그에 대한 정보를 잘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러한 점을 잘 활용하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장점이 그렇듯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나 일을 할 때에는 섬세함에 크게 기댔을 경우 상처를 받거나 상황이 꼬이는 경우가 많아요. 일도 결국 사람이 하기에 관계가 중요하긴 하지만, 단순히 친구와 즐겁게 노는 것이 아니기에 관계만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지는 않으니까요.


  이런 사람이 공학을 하면 상황이 조금 더 어려워집니다. 공학은 과학을 기반으로 하고 사람의 관계와 감정이 개입하지 않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런 것 같아요. 논리적으로나 실험적으로 옳고 그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인데요. 엔지니어들이 모여 일을 한다는 것은 이를 알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서로의 논리를 검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의견과 비판이 오가게 되고, 때로는 날 선 토론이 이어지기도 하죠. 문제는 인간관계에 섬세하면 비판을 비난처럼 느끼기 쉽다는 겁니다. 비난과 비판의 경계선은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인데, 섬세하다 보면 같은 메시지도 비난으로 느끼기 쉽도록 마음의 경계선이 치우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섬세한 사람으로서 저는 피드백을 전달할 때 단어 선택과 문장의 구성에 참 많은 신경을 씁니다. 중요한 건 상대가 마음을 움직여 그 내용을 수용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그동안의 저는 주니어였던 적이 많아서 피드백을 주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제가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논리를 중요시 여기는 분야의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다수는 그 정도까지의 배려를 피드백에 담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원하는 만큼 문장에 신경을 써주지 않는달까요? 물론 피드백의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비판을 비판으로써 수용할 수 있어야 발전한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항상 신경이 쓰였습니다. 내가 배려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갖고 있는 걸까? 상대는 충분히 배려한 표현인데도 내가 너무 예민하고 나약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그동안은 이런 순간들을 마주했을 때 제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면서 상대방과 섬세함의 간극을 맞추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효과가 없었어요. 상대는 표현이 큰 악의가 없었지만 저는 그것에 비해 많은 걸 느끼고 있었기에, 저의 표현은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항변으로 전달되어 오히려 오해만 커졌습니다. 물론 표현의 미숙함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말의 의도를 잘 담으려 아무리 애쓴다 한들 그 메시지를 해석하는 것은 오롯이 상대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많은 경우 제가 원하는 흐름과는 반대의 결과를 마주했고, 제 섬세함을 이해해 달라는 요구가 큰 소용이 없다는 걸 반복적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러한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 표현보다는 침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섬세함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요.


  마음으로 받는 상처는 많은데 감정적으로 많이 내주는 성격이라는 게 조금은 억울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일을 하는 관계에서까지 제가 기대하는 것만큼의 감정과 따뜻함을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억지스러운 이기심인 것 같기도 하고요. 모든 사람과 친구로서의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기에 모든 관계에서 따뜻함을 느끼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야 절실히 느끼는가 봅니다. 그래도 이 섬세함을 포기하고 무뎌지고 싶지는 않아요. 단지 이 모습을 모든 순간에 내비치면서 사는 것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여전히 저는 사람들과 하는 건강하고도 따뜻한 교류가 가장 중요하고 그것에 섬세함이 많은 도움을 주니까요. 조금씩 균형을 잡아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필 관계에서의 섬세함이 발휘되기 어려운 엔지니어를 직업으로 선택해서 난이도가 만만치는 않겠지만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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