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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Apr 11. 2022

당신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나요?

기브 앤 테이크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 사이 일을 관통하는 핵심 중 하나는 '원하는 것을 주어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건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는데, 부모가 자식에게 많은 것을 주는 이유는 자식이 부모에게 사랑의 감정을 일으키는 자신의 존재를 주기 때문입니다. 살아 숨 쉬며 존재만 하면 되는 비교적 쉬운 조건이기에 당연해 보일 뿐, 사실은 그 자체도 무언가를 주고 있는 셈이죠. 부모 자식이 아니라 서로 남남인 사이를 생각해보면 이 문장은 보다 와닿습니다. 처음 보는 상대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한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선뜻 내어줄 의무는 전혀 없죠.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이유는 노동을 제공하기 때문이고, 대학원에서 논문이라는 결과와 연구비를 얻는 것은 연구를 통해 학문적 발전에 기여했기 때문이고, 누군가와 인간적 교류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며 생존을 위해 기본적인 의식주를 필요로 하고 즐거움을 위해 경험이나 물건들을 욕망합니다. 필연적으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얻을 수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기에 동시에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주고 원하는 것을 받으며 살아가는 셈이죠. 주는 입장에서야 이왕이면 별다른 노력 없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상대가 원하는 걸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기에 그런 소수의 사례를 재능이 있다고 하는 거겠죠. 하지만 설령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경우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도 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만큼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딱히 방도가 없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보다 날카롭게 갈고닦아 가치를 올리는 수밖에요.


  단순해 보이지만 꽤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잘 안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거예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실질적이고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공학을 전공했기에, 이걸 업으로 삼아 세상에 내어줄 수 있다는 게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최고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불안함이 있어요. 아직 갈고닦으며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고 바라는 수준이 높아서 그런 것인지, 제가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정말 실제로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답을 찾고자 나름 경험도 고민도 많이 해봤는데 오히려 그것들이 더 헷갈리게 만들고 있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어요. 더 나은 것, 더 멋진 것,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를 막연히 바라는 거라면 이룰 수 없는 허상을 좇고 있는 거니까요.


  답이 명확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현재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보다는 지금 줄 수 있는 것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고자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게 현실에 대한 안주일 수도 있고 더 나은 가능성에 대한 포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게 있고, 그것의 대가가 나름 만족스럽다는 것 자체로도 크게 감사할 일이 아닌가 싶어요. 이것으로 지금의 저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중요한 사실이니까요. 또 공학자로서 문제 해결책을 제공할 때, 단순히 기술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나 사용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때 보다 나은 것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가지고 있는 흥미나 경험들을 단독으로 사용하기보다는 공학이라는 기반 위에서 활용할 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시작보다는 지금의 환경에서 제가 줄 수 있는 것들에 몰두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나 봅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세상에 무엇을 주고 싶어 하는지, 실제로 무엇을 줄 수 있는지가 정말 궁금합니다. 세상에 내어줄 수 있는 것과 자신의 즐거움이 맞닿아 있는 사람을 만나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을,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동경심과 저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자는 다짐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질문을 계속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던질 것 같습니다. 당신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나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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