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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Mar 28. 2022

로봇도 사람도 단순한 반복에서 시작한다

반복은 기본

  로봇에는 제어기라는 부품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두뇌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어 로봇이 목표를 수행하게 하는 복잡한 명령들을 처리해요. 특이한 점이 있다면 모든 명령들을 일정 간격에 맞추어 처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보통 천 분의 일 초, 혹은 그보다 더 짧은 시간 간격을 지켜야 해요. 별거 아닌 것 같은 단순한 규칙이지만 만약 이 시간 간격이 지켜지지 않으면 로봇이 오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그래서 로봇이 안전하게 움직이려면 외부의 환경이 변하거나 아무리 복잡한 계산이 필요해도 이 규칙을 지켜내야 합니다. 화려하고도 신기해 보이는 로봇의 작업들 밑에는 가장 단순하게 보이는 규칙의 반복이 깔려 있는 셈이죠. 


  한 사람의 일상도 조금 들여다보면 그런 단순한 규칙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어기만큼 엄격하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매 순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출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등의 일을 매일 수행하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로봇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느 상황에서나 안정적으로 동작해야 하는 제어기처럼, 사람도 각자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단순히 보이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반복을 통해 외부에서 일어나는 참 많은 일들에 무너지지 않고 일상을 지탱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귀찮고 지루해도 해내고 나면 끝내 작은 뿌듯함이 찾아오는 게 그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규칙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반드시 일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어기가 시간 간격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로봇이 아무것도 못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일이 닥치거나 일상을 넘어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고자 한다면 이 규칙은 분명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제어기가 반복을 지켜내지 못하는 로봇에게는 높은 수준의 복잡한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이를 제대로 성취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뿐더러, 신뢰가 없으니 어떤 오류로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마찬가지로 개인이 작은 규칙의 반복을 통해 일상을 안정적으로 지켜낼 수 있다는 신뢰가 없다면, 큰 만족감이나 꿈을 세상이 함부로 허락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설령 운이 좋아 그것들을 품을 수 있다고 한들 언제 오작동할지 모르는 로봇처럼 행운이 떠나갈까 봐 늘 불안해할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앞으로 회사에서 제어기를 꾸리는 역할을 맡게 될 것 같은데, 이를 위해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정리하던 와중에 문득 든 생각이었습니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제 생활과도 꽤 많이 닮은 것 같아 왜인지 모르게 반갑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지금 제가 어떤 큰 꿈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단순한 반복들이 쌓이면 내공이 되어 언젠가 분명 든든한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로봇과 사람이 하는 일 모두 결국은 단순한 반복에서 시작하니까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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