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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Jun 20. 2022

우리나라 교육은 진로 결정에 큰 도움이 안 된다

입시는 진로와 상관이 없다

  저는 보통의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대학 입시 위주의 학창 시절을 겪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 진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여러 아쉬움을 크게 느껴왔습니다. 제가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마 같은 과정을 겪으셨던 분들이라면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끼시지 않을까 싶어요.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보거나 지금 당장 저의 진로를 고민할 때마다 약간의 좌절감이 밀려옵니다. 좋은 점수를 받고 교과서에 있는 한정된 지식을 배우는 것에만 급급했고, 나 자신이 어떤 특징과 재능을 가진 사람인지 파악하기 어려웠으며,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기에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 직업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할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렇듯 스스로에 대한 고민의 부족함은 성인이 되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에서도 직업탐색이 지속된다는 점에서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수업에서는 그러한 고민을 던져주지도 않고, 배우는 지식을 통해 특정 직업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경험해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몇몇은 꽤나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전공인 기계공학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역학 문제를 푸는 것이 대학에서 전공을 배우는 것, 대학원에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 나가는 과정, 회사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비추어보면 매우 잘 정제된 축소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 수업이나 교과서에 없는 세상의 다양한 진로는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로를 잘 결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영역의 문제 상황들을 접하고 해결해보는 경험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번갈아 가며 이루어져야 한다 생각하는데, 교육과정과 지식이 보장하지 않는 분야는 접할 수 없으니 제대로 된 진로 결정을 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교육을 통해 진로보다는 기초적인 사고력과 상식을 가르쳐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서 이러한 과정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장 내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모르니 공부가 재미도 없고 별로 배우고 싶지가 않습니다. 공부가 원래 그런 거라지만 모든 사람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대학이라는 더 나은 기회와 환경을 위해 스스로에게 잘 맞지도 않는 것에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게 올바른 방향은 아닌 듯합니다. 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학생 개개인이 각자의 삶을 잘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진로 설정을 도와주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아쉬움이 있어 시장에서도 다양한 진로교육 사업이 등장하고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현업 종사자와의 멘토링이나, 해당 직업 혹은 분야의 내용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내용으로 교육이 구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이 미래의 특정 직업을 가졌을 때 그 직업을 실감 나게 체험해볼 만한 재미와 제대로 된 진로체험을 압축적으로 갖춘 콘텐츠를 찾기는 어려운 듯해요. 예를 들어 만약 직업이 엔지니어라면 해당 분야의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경험해 보는 게 개인의 적성을 파악하기 가장 좋은 방식이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 자체는 물론이고, 만들어낸 이후에도 사업적으로 큰 확장성을 갖기는 더욱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시장에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진로교육을 해줄 수 있는 플레이어가 없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쯤 되니 진로교육은 개인의 창업이나 노력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과 제도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인 건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대학생 시절 과외와 공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연 활동을 즐겁게 했다 보니 이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이고 때로는 일종의 사명감도 느끼고 있다 보니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해야 할지, 애초에 시작하는 게 맞을지, 특정 직업에 대해 어디까지 알아야 진로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 등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본업 외의 다른 것에 크게 몰두할 의욕과 여력이 없다 보니, 사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 자체도 문제만 내뱉고 해결은 신경 쓰지 않는 무책임한 모습이라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남겨야겠다 싶었어요. 제가 진지하고도 오랫동안 문제의식을 가져온 주제에 대해서 스스로를 가두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언젠가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움직이고 작은 해결책이라도 강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고민을 분명 저만 하고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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