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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Jul 11. 2022

이제 기계공학과는 취업이 어려운 걸까?

기계공학과의 취업

  불과 몇 년 전, 기계공학과에 진학하는 것은 딱히 유별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변 어른들은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했다고 좋아하셨죠. 소위 취업 깡패라 불리던 '전화기', 전기공학이나 화학공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학과였으니까요. 그래서 큰 고민 없이 기계공학과를 선택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학번이 되어서부터 였을까요? 기계공학과에 대한 관심이 학생들로부터 서서히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기계공학과 학생들이 학과를 바꾸어 진학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어요.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니었던 것이 최근 제 모교 신입생 분들의 학과 선택 결과를 통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총 10개의 학과 중에 기계공학과가 무려 꼴찌를 기록한 건데요. 자연계열을 크게 선호하는 학생들이 있는 학교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정말 충격적인 지표였습니다. '기계공학과는 이제 취업이 어려워진 걸까' 하는 담론이 형성되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어요.


  취업시장에서 바라보면 기계공학과의 수요가 줄어든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제조 기반의 산업보다는 IT 산업이 대두되어 관련학과인 전자공학과나 컴퓨터공학과의 수요가 크게 상승하고 있으니까요. IT가 신대륙처럼 새롭게 개척되는 시장이기도 하고 생산과 배포에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되다 보니, 초기 비용이 많이 들고 확장이 비교적 어려운 제조 기반의 상품보다는 보다 큰 경제적 파급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 인터넷을 넘어 블록체인이나 메타버스와 같은 산업도 떠오르기 시작했으니 IT 산업의 강세는 당분간 이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연스레 관련 학과의 진학률도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 같아요.


  이러한 흐름에서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기계공학과 출신들의 취업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커져가는 산업의 수요에 부합하는 내용을 전통적인 기계공학과에서는 주로 다루지 않으니까요. 안 그래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연봉이 엄청나게 치솟는 요즘이다 보니, 같이 졸업한 친구들이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학과를 잘못 선택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체의 상호작용과 움직임을 분석하고 물리적인 시스템에 대한 직관을 기르는 일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집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기계공학은 여전히 산업에 필요한 학문이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조업과 같이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중요해 왔으니까요. 기계공학은 현실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학문입니다. 그렇기에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폭발적인 수요가 있지는 않아도 항상 어디에나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물성이 있는 제품을 만드는 산업현장과의 밀접한 정도를 따져 보면 그 중요성이 퇴색되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더불어 이전에 인턴을 했을 때 한 팀원분께서 '정말 뛰어난 엔지니어는 기계공학과에서 주로 나오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학부과정에서 여러 분야를 폭넓게 배우는 만큼 복잡한 시스템을 마주하더라도,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러한 말씀을 해 주신 것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 기계공학과의 취업이 어려워진 것은 학과에서 배우는 내용 의미가 퇴색되어서가 아니라, 시장이 크기가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취업을 염두하고 있는 대학생의 입장에서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수요가 크게 늘어난 직종을 선택할 것인지, 앞으로도 꾸준히 수요가 존재할 만한 직종을 선택할 것인지 사이에서 분명한 정답은 당연히 없습니다. 수요가 많은 곳은 그만큼 사람이 몰려 경쟁이 치열할 수도 있고, 꾸준히 수요가 존재하는 곳은 같은 양의 질과 일을 하고도 다른 직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수요가 충분한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어 내겠다고, 누군가는 공급이 줄어든 분야에서 내가 공급함으로써 가치를 인정받겠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미 지나간 일 이기도 하지만, 저는 제가 전공한 기계공학에 대해 크게 후회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이해하며 만들어 낼 수 있는 학문을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IT산업 쪽의 지식까지 습득한다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나름의 뿌듯함과 자신감이 있거든요. 무엇보다도 시장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제 자신의 실력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작은 시장이라도 저의 실력이 월등하다면 어디든 취업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당분간 이 학문을 보다 잘 활용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산업의 불운만을 탓하기에는 저의 실력이 아직 많이 모자라니까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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