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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Aug 15. 2022

일하는 걸 좋아합니다

워커홀릭

  대학에 와서 가장 찾고 싶었던 것은 제가 사랑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을 보면 일상의 대부분을 일에 쏟아야 하는데 그 일이 하기 싫으면 삶이 참 괴로울 것 같았거든요. 고등학생 때는 공학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만들어내는 학문이라 생각해서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대학에 진학하니 전공보다는 다른 교내외 활동들이 훨씬 더 재미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가 완전히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주변 친구들로부터 워커홀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시간을 빡빡하게 쪼개 계획을 세우고 학업과 다양한 일을 해내는 것을 즐겼어요. 제 자신의 성향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기억이 많아서 비슷한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가속된 것 같습니다. 일에 진심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참 즐거웠거든요. 대학시절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가장 강렬한 순간을 꼽으라면 다양한 이유로 모인 사람들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협력하고 최선을 다했던 시간을 주저 없이 말할 겁니다.


  예전에는 욜로라는 말이 최근에는 워라벨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순간의 삶을 즐기는 것도,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이루어져 삶이 무너지지 않는 것도 정말 중요하죠. 그런데 이런 말들이 최선을 다해 일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도 종종 보입니다. 저는 삶에 있어 일이 주는 행복을 무시할 수 없다고, 오히려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일 자체는 사회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행위이기에 개인의 존재가 온전히 낄 틈이 크게 존재하기는 어려워요. 그럼에도 일이라는 행위는 일을 수행하는 개인에게 여러 가지 보상을 줍니다. 경제적 보상, 사회적 지위, 결과물로서 만들어내는 가치, 자기 효능감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몰입이에요. 사회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에게 관대하고 무엇인가에 몰입했을 때는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회의 압박에 크게 부딪치지 않으며 가장 자연스러운 몰입 상태를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렇지만 늘 즐거움만 가득하다면 일이 아니겠죠. 원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고 계획이나 생각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면서까지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며 제가 워커홀릭처럼 강박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저에게 있어 일은 반드시 해내야 하는 저의 전부가 아니라 삶을 지탱해주는 기둥 중 하나일 뿐입니다. 단지 그 크기가 꽤나 클 뿐이죠. 그래서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면 일이 아니라 제 자신만 보면서 스스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고 그 시간을 흘리는 것에 집중합니다. 바꿀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들이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괴로워하지 않으려 하고요. 체력을 가꾸고 일상의 단순한 행위들에 집중하며, 힘든 감정들과 솔직하게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 다시금 일이 저에게 기쁨을 선물해 줄 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에요. 며칠간 골똘히 고민했던 문제가 거짓말처럼 해결된 오늘의 순간처럼 말이죠. 설령 그러한 성취가 없다 한들, 성과의 압박이 저를 괴롭히는 순간들이 많다고 한들 꽤나 괜찮습니다. 최소한 일은 저에게 하루를 살아가야 할 작은 목표와 마음껏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선물해주니까요.


  모두가 일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일을 사랑한다고 하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해요. 저 조차도 일하기 죽도록 싫은 순간들이 있고, 때로는 그냥 편하게 평생 놀고먹으며 인생의 달콤함만 느낄 수 있는 부와 명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지금과 같은 즐거움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리고 동시에 별로 하고 싶지 않기에 일이 더 가치 있고 사랑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평범하기 그지없는 저라는 사람이 다른 이들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감탄하고 뿌듯해할 만한 행위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제 몸과 마음이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일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무리 작은 가치라도 주도적으로 세상에 내놓으면서, 자주 몰입하고 때로는 그 몰입의 결과를 선물 받으면서 말이죠.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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