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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Aug 08. 2022

어른스러우면 뭐가 좋아요?

어른스러움

  몇 년 전 과외를 통해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어렸을 적부터 악기를 전공하다가 꿈과 목표가 바뀌어 보통의 대학입시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저는 예체능과는 거리가 있어 자세한 내막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친구가 겪어온 시간들은 잔인하고도 치열한 전쟁터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어온 예체능 전공자들의 이야기가 진짜였구나 싶었어요.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재능이 받쳐 줘야 하는, 그럼에도 전공자로서 경제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되는 지옥 같은 경쟁이었습니다. 그렇게 산전수전을 겪다가 다른 길을 선택한 그 친구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독기를 품은 듯한 눈빛과 말투는 위압감마저 느껴졌고요. 그래서 참 어른스러워 멋있고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꽤 자주 전했었습니다. 그 친구로부터 '어른스러운 뭐가 좋아요?'라는 질문을 듣기 전에는 말이죠.


  저도 주변에서 꽤나 어른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었습니다. 행동의 성숙함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애늙은이 같다는 이야기였지만요. 인간으로서 나 개인의 삶이 궁금했고 세상이 궁금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앞서 살아간 선배님들의 지혜를 듣는 것도 참 즐거웠어요. 그런 상황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두 발짝씩 앞서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힘들어도 조금 더 인내해야 한다고, 단순히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복잡한 부분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게 제가 생각한 어른스러움이었어요.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일종의 우월감과, 가끔 어른들로부터 받는 이쁨 덕에 제 모습이 썩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해 버린 탓에 다가오지도 않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청춘의 활기마저 사라져 버린 듯한 그 친구를 바라보자, 그 나이대에만 할 수 있는 유치 하지만 찬란한 추억을 남길 기회를 때때로 놓친 듯한 제 자신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쉬이 어른스러움의 장점을 말할 수 없었어요. 항상 늦은 만큼 더 애써야 한다는 다짐과 의젓함을 내뱉었지만 동시에 너무 지치고 힘들다는 괴로움도 함께 표현하던 그 친구 앞에서는 더더욱요. 오늘 회사에서 개인 미팅을 진행하다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 그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욕심도 많고 스스로의 부족함만 크게 보여서 그런지 어른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어른스러우면 어른들만 좋아한다는 코멘트도 함께 받았어요. 저도 그 친구가 어른스러웠기 때문에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걸까요?


  예전에는 어른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저의 모습이 좋을 때도 있었고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성향 중 하나이고 그렇기에 당연히 장단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일종의 단념이자 받아들임입니다. 조금 재미없게 사는 것 같아도 내면의 단단함이 있고, 지루해 보이는 고민을 하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마주할 고민을 미리 조금씩 나누어 애쓰는 거니까요. 어른스러워 좋은 건 딱히 없다고 봅니다. 동시에 그렇다고 크게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도 함께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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