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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Oct 10. 2022

회사일에 주말을 갈아 넣었다

주말에 출근하는 신입사원

  회사에 속해서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엔지니어는 항상 바쁜 것 같아요. 아니, 아무래도 저희 회사의 일정이 유독 숨 가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여러 회사들에서 경력을 쌓아오신 팀원분들이 혀를 내두르시는 것을 보면 분명 올해 수립된 일정이 말도 안 되게 빡빡한 것이 확실합니다. 실제 동작하는 엔지니어링 샘플을 만들고 그것으로 꽤나 규모 있는 실험을 여러 번 진행해야 하거든요. 지난번에 진행된 한 번의 실험은 과거의 엔지니어링 샘플로 어찌저찌 넘겼지만, 목표로 하는 연구개발 결과에는 한참을 못 미치는 수준이라 거의 모든 부분에서 수정과 개선이 필요했습니다. 문제는 실험을 3일 앞둔 시점에서야 기계 조립과 배선 작업이 완료되었다는 겁니다. 완료가 되었다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입장에서는 시간이 정말 턱없이 부족했던 셈이죠.


  다행히 실험 결과는 썩 나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목표로 했던 여러 기능들을 포기하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기능은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거든요. 물론 그를 위해 견뎌야 했던 육체적 정신적 압박은 쉽지 않았습니다. 새벽까지 남는 것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나와 늦게까지 일하며 코드에 논리적인 오류는 없는지 전전긍긍해야 했고, 실제 로봇과 합쳤을 때 발생하는 여러 문제 상황들 때문에 실험을 진행하는 순간에도 코드를 수정해야 했어요. 학부나 대학원 때의 치열함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환경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평소 절대 밤을 새우지 않기도 하고 체력도 좋지 않아 이렇게 빡빡한 일정을 견디기 위해 깨어 있는 시간을 엄청 밀도 있게 쓰거든요. 그렇게 애써와도 결국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할 수밖에 없는 일정에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부어 일정을 마무리했건만, 다른 팀에 팀원 분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번 해내고 나면 위에서는 계속해서 이 수준의 요구를 해서 피곤해질 거다'라며 왜 그랬냐는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사실 그 부분이 두렵기도 했어요. 다음에 비슷한 강도의 목표를 수행하지 못했을 때 '지난번에는 해냈는데 왜 지금은 안 되는가'라는 질책을 들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갈아 넣어서 해낸 일정이다 보니 이런 호흡의 업무는 앞으로 절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위험한데 반복적으로 이렇게 일을 하다가는 모두가 지쳐 나가떨어질게 분명해요. 분명 도전적인 과제를 나름 잘 마무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하지 않은 과로가 요구되고 비정상적으로 빡빡한 일정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그리하여 저는 물론이고 정말 좋은 우리 팀원분들이 갈려나가 함께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까 걱정이 몰려왔습니다.


  어찌 됐던 이제야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합니다. 쉽지 않았고 앞으로의 일도 걱정이 되긴 하지만 사실 이번 마무리는 저에게 있어 굉장히 의미가 커요. 살면서 처음으로 공학을 통해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거든요. 기준이 높은 탓인지, 스스로의 역량이 부족한 탓인지, 주변에 너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유독 공학 분야의 문제를 공학자로서 풀어냈다는 성취감을 크게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과 무엇인가를 해내거나 다른 분야에서는 그런 성취감을 맛보았었는데, 학부 때 시험을 치르거나 대학원 때 연구를 해도 성취감을 느낄 수는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실험에서 제대로 동작하는 로봇을 제 눈으로 직접 바라보면서, 팀원분들께 정말 중요한 일을 잘 마무리해 주었다는 격려를 들으면서, 치열한 일정 속에서 이런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큰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좋은 팀원분들과 함께 이뤄낸 성취라 더더욱 기뻤고요.


  하지만 여전히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정을 견디거나 이런 자극을 추구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번의 성취는 특별히 예외적인 사건으로 남겨두고 싶어요. 밤과 주말을 갈아 넣는 회사원의 생활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면 좋겠습니다. 저는 일을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특히나 이렇게 좋은 팀원분들과 함께 해나가며 건강하게 발전하고 싶거든요. 지속 가능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유별나고 자극적인 맛의 성취감을 느끼지 않아도 좋으니까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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