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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Jan 02. 2023

잘 살다가 갑자기 공허해졌다

성취의 부작용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 몸이 움츠러들어 둔해지고 의욕도 떨어지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날씨가 항상 적절하게 좋을 수는 없으니까요. 어쩌면 마음이 날씨의 변화를 많이 닮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봄날처럼 한없이 포근하고 따뜻한 날이 있는가 하면 한겨울처럼 차갑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으니까요. 저는 유독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사람이라 이 변화가 자주 찾아옵니다. 요 근래는 충만함보다는 공허함이 더 크게 느껴졌던, 또다시 일상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번뇌가 몰려왔던 시기였어요.


  바로 직전 글에서 스스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어 만족하며 지낸다는 내용을 올렸는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라도 생긴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제 삶이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동시에 무엇인지 모를 부정적인 감정도 느껴집니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정리를 해보려고 했는데, 많은 이유들이 얽혀있는 듯하여 그게 쉽지 않습니다. 다만 그동안의 기록들 덕분에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이 느낌을 결코 처음 겪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제가 어떠한 선택과 노력을 해왔던지와 상관없이 항상 이런 순간을 마주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피할 수 없는 감정이기에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애써야 할 것 같습니다. 간략하게 정리를 할 수 없다면 풀어헤쳐보아야겠죠. 


  저는 특별해지고 싶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서 압도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된 영향력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과연 그게 나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일까?’라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는 거예요. 물론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떳떳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많아 항상 원했던 목표치가 너무 높아서 운 없이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늘 특별한 목표를 추구했고, 그러다 보니 성취를 해내도 저의 노력보다는 운이 더 크게 작용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도전할 수 있을 것이며 얼마만큼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어요. 무수히 많은 도전 속에 많은 실패를 겪었고, 앞으로 운 없이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배짱이나 단단한 자존감을 갖지는 못한, 그럼에도 이미 크게 성취했을 때의 쾌감을 알아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듯합니다.


  특별해지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만, 그 부단한 노력이 항상 빛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운이 따라주어야 하죠. 문제는 제가 그동안 특별함을 위해 노력했던 것은 그 운이 따라줄 것이라고 믿었기보다는, 운이 없어 실패하더라도 그 시도를 해보았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둘 수 있겠다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상방보다는 하방을 바라봤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스스로가 큰 타격을 입지 않을 도전이기에 해왔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도전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제 마음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스스로가 성공했다고 느끼는 건 동시에 가진 것으로 인해 지키고 싶은 게 생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취를 해낼수록 성취의 만족감은 높아져 도전의 리스크는 커지고 동시에 가지는 것 또한 많아지니, 더 이상 실패를 해도 시도했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기가 어려워집니다. 시도했다면 반드시 이뤄내야만 내가 가진 것들을 걸었던 의미가 있으니까요.


  마음을 다잡고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운이 따를 것이라 믿고 도전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또 하나의 문제는 그렇게 도전하여 얻어낼 성취란 무엇이고, 끝내 그 성취를 얻어낸다면 또 다른 성취를 얻어내고자 하는 욕심을 바라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듭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대로라면 아마 지금 말하는 성취는 필연적으로 남들의 시선이나 사회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취는 소위 말하는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위로 올라가면 또 다른 위가 있기에 끝내 이뤄낼 수 없는 것을 욕망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끝없이 반복되는 굴레에 빠지는 것이, 성취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섭고 두렵고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해지고자 애쓰며 성취를 추구하는 것도 결국 제가 만족하고 삶을 건강하게 영위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안분지족 하는 삶이 가장 행복할 것임을 알지만, 타고난 성격에 욕심이 많으니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천성을 거스르는 것은 아닌지 고민되기도 합니다. 제가 저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어디까지가 저의 본성이고 어디까지가 욕심인 걸까요. 만약 욕심이 제가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라면, 그동안 얻어낸 성취들은 단 하나도 괴롭지 않은 게 없었으니 모두 욕심이었던 것일까요. 성장하는 순간과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의 차이는 너무나도 찰나이기에 욕심도 결국에는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해냈다면 본성이자 한계를 극복한 거고, 그러지 못했다면 욕심인 거죠.


  어쩌면 완벽함을 쫓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외부적인 조건들로 바라보아도 높게 올라가고 스스로의 세계도 만족할 수 있는 삶 말이죠. 그런데 저는 외부적으로 높게 올라가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아는 것에 비해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것에는 많이 서투릅니다. 애초에 그동안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것이 학업이나 커리어로 대변되는 외부적인 요인들이니까요. 물론 그것도 저를 위한 길이긴 합니다만, 다른 사람들이나 사회적인 요소가 엮이지 않고 온전히 혼자서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방법을 그렇게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본래 사람과 관계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렇다고 해도, 홀로 또 하나의 타인인 제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건 꽤나 불안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특별함과 성취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홀로 있을 찰나의 시간조차 만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조차 없게 계속해서 밖과 교류하고 그것에서 만족을 느끼도록 말이죠. 돌이켜보니 잠자는 시간 외에는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는 순간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더라도 제 손에는 항상 스마트폰이 들려있으니 말이죠. 추가적으로 이러다 보면 제가 욕심부리는 외부적인 조건들의 기준도 계속해서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미디어와 커뮤니티에서 떠들어대는 수많은 기준들은 결코 다 만족할 수 없음을 숨긴 채 교묘하게 저의 생각에 스며드니까요.
 

  이렇게 늘어놓아 보니 몇 가지 실마리가 보이는 듯합니다. 어쨌든 저는 특별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면 붙잡을 겁니다. 그동안의 제가 그래왔던 것처럼요. 다만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제가 마주할 기회들은 더 이상 이전의 그것들처럼 단기간의 노력으로만 결과를 마주할 수 없을 겁니다. 단순히 멋있어 보이기만 하던지 해낸다고 무조건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닐 거예요. 더 크고 좁아진 성취와 특 별함이 기다리는 만큼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넣어야 할 겁니다. 그렇기에 보다 긴 호흡으로 천천히 고민하며 조급함을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특별함이 무엇인지, 특별함에 많은 요소들이 얽혀있다면 그것들이 어느 비중으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반드시 지금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야만 그 특별함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인지 말입니다. 너무 급하게 답을 내리려 하지 말고, 불필요한 외부로부터의 생각 유입을 자제하면서 제 자신을 보다 깊게 알아가야겠어요. 그러다 보면 특별해지는 것보다 제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에 더 크게 마음을 빼앗길지도 모르니까요. 특별해진다는 것이 반드시 높은 성취를 이뤄낸다는 것과 동일하지 않을 수 있음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 무거운 고뇌가 크게 반갑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언젠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로부터 나온 물음이니 제 안에서 찾을 수 있겠죠.  어느덧 올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날이 많이 춥습니다. 다들 건강 조심하시길 바랄게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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