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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 Jan 09. 2023

행복에 대한 뻔한 이야기

행복해지는 방법

  행복해지는 법은 간단합니다. 스스로 행복하다 느끼면 됩니다. 이 무슨 당연한 소리를 뻔뻔하게 하는 걸까 싶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꽤나 명확한 답입니다. 당장 내 수중에 그렇게 많은 돈이 없거나 하는 일이 너무 고되더라도 스스로가 만족스럽다 느끼면 만족스러운 겁니다. 반대로 돈이 아무리 많거나 하는 일이 누구나 선망할만한 일이더라도 스스로가 괴롭다 느끼면 괴로운 거고요. 극단적으로는 압도적인 빈곤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넘치는 풍요 속에서도 불행할 수 있지만, 사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극단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으니까요. 정말 어쩌다 삶의 축 중 하나가 극단에 있을지언정, 다른 무수히 많은 축 중 몇 개는 분명 극단이 아닌 보통 근처에 머무르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더욱 스스로가 행복하다 느끼면 행복한 것이라는 말은 꽤나 설득력 있는 명제입니다.


  문제는 그게 가장 어렵다는 겁니다. 당연하죠. 그게 쉬웠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서 이승은 이미 유토피아가 되었을 테니까요. 행복하다 느끼는 게 어려운 이유에는 많은 것이 있겠지만, 저는 행복의 기준이 철저히 개인적이라는 것과 한 사람은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들이라 봅니다. 우선 남들이 뭐라 한들 내가 행복하면 행복한 겁니다. 그만큼 행복은 온전히 개인적인 감정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태어날 때 나라는 것이 없는 무의 상태였다고 가정해 보면,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행복한 상황을 경험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무의 상태에서 새로운 상황에 노출되어야 하는 셈인데,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지라 이 사건은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들이 개입한 상태로 발생합니다. 그래서 타인이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낸 상황을 겪고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부분적으로 경험하죠. 이미 누구나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상황에 노출된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느낀 행복에는 크던 작던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엮여 있습니다. 어렸을 적 양육자가 우리를 길러준 것부터 학교를 가고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들 곳곳에 말이죠.


  그 결과로 내가 행복하다 느끼는 기준이 온전히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겪은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타인이 얽혀있다는 것은, 그 상황에 느낀 감정에도 타인이 얽혀있다는 것이니까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행복을 느낀다 말하는 사건들을 경험하고 그중 나에게 맞는 것을 취사선택하여 내 행복의 기준으로 만들어내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물론 그게 잘못되었거나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기준을 찾는다면 가장 좋겠죠. 깊은 고민이나 혼자서의 새로운 도전 없이도 다른 이들의 기준을 습득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것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행복의 기준을 찾아나가기만 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기준이 지나치게 흔들리거나 많아진다는 겁니다. 보통 비교의 형태로 나타나죠. 원하던 원치 않던 우리는 평생을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들을 마주합니다. 그때마다 다양한 감정은 물밀듯이 밀려올 테고, 그때마다 행복의 기준이 변한다면 현재는 물론이고 그동안의 과거마저도 불행해지는 경우가 생기고 말 거예요.


  그래서 가장 건강한 행복은 온전히 스스로가 만든 기준에서 바라본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온전히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면 너무 닫힌 사람이 되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는데, 최소한 저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온전히 스스로가 만든 행복의 기준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거든요. 무엇이 온전한 제 자신인가요? 외부의 영향이 하나도 없이 온전히 나로부터만 비롯된 것이 있을까요? 어차피 이 세상 속에서 나는 수많은 것들에 의해 변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기에 외부적인 요소들을 최대한 던져두고 생각하려 애써도 이미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외부와의 연결점은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외부의 기준들을 최대한 걸러내야 합니다. 타인에게 예민한 사람일수록 더더욱요. 행복의 기준이 나에게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외부로부터 받는 영향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건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렇게 잘 아는 것 같은 제 자신은 행복할까요? 스스로에게 가까운 건강한 행복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까요? 당연하게도 아닙니다. 너무 어려운 주제예요. 사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크게 사랑하는, 그래서 주로 타인이나 타인의 기준으로부터 행복을 찾아왔던 저로서는 위에서 얘기한 뻔한 이야기를 납득하는 것조차도 오래 걸렸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제 행복의 중요한 요소는 맞지만, 그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의 중심을 저에게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설령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의 다른 기준으로부터 느껴지는 행복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론 이제야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알았을 뿐, 능숙하게 잘 해내지는 못합니다. 제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타인의 잣대와 생각들이 밀려와 그 모습들을 흐려놓기 일쑤거든요. 다른 이들과 함께하되 다른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 자신을 단단하게 꾸리는 것은 늘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부의 불필요한 생각을 차단하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돈, 명예, 지위, 외모 등 타인과 비교하기 쉬운 것들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줄여나가려고 해요. 가장 가깝게는 인터넷에서 쉽게 접하는 미디어나 커뮤니티부터 필요하다면 제 주변의 사람들까지, 자극적이고 불필요한 메시지로 제 자신을 흔들 수 있는 것들로부터 일단 멀어지고자 합니다. 그렇게 바깥의 흔들림이 잦아들면 차분하게 제 자신을 알아가보려 합니다. 더 상세하고 다양한 질문을 던질 거예요. 삶의 원동력이라 생각하는 성취는 어느 정도와 어떤 방향의 성취를 원하는 것이며, 그 성취를 위해 나는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지. 사람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호불호는 분명 존재할터인데 그것의 부끄러운 민낯은 무엇인지. 나에게 잔잔한 안정감과 만족감을 전해주는 사소한 것들은 무엇인지. 그동안 나를 기쁘게 했거나 슬프게 했던 것은 무엇인지 등등 말이죠. 그러면 보다 솔직한 저의 모습을 마주하고 저 다운 행복의 기준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조금씩 배우고 알아가면 충분히 자주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 이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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