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9
테넷을 보고 왔습니다. 이 시국에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영화관 내부에서 이미 거리두기를 고려하여 좌석을 배정하였고, 관람하는 사람도 15명이 채 되지 않아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보고 왔습니다.
저는 기계공학을 배웠다 보니 엔트로피와 알고리즘이라는 개념에는 익숙해서 영화에 나오는 용어들이 크게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확실히 불친절하게 훅훅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서, 영화의 서사는 리뷰를 두세 개 정도 찾아보고 나서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과학적인 논리성은 차치하고 물리적으로 어려운 시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런 영화를 만든 게 공학도로서 꽤나 흥미진진했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훌륭한 연구자는 훌륭한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이라는 언어를 바탕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이 연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테넷을 보고 나니 '영화도 연구의 영역에 어느 정도는 속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엄밀하게 과학적이기만 한 언어를 쓴 것도 논문의 형태로 나온 것도 아니지만, 분명 시간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철학에 녹여내어 영화라는 매체로 표현을 해낸 것이니까요.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철학이 녹아있는가'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연구와 영화 제작에 모두 들어있는 요소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생각이 조금 더 확장되어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행위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세계를 구성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세상에 표현함으로써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예술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는데, 멋진 철학과 우아한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이목과 동경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으니까요. 다만 과학적 연구의 관점에서는 그 철학 이전에 과학적으로 올바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멋진 철학이 담긴 연구라 하더라도 과학적으로 틀리면 안 되니까요.
테넷의 리뷰를 보니 '너무 관람객을 무시한다', '불친절하다', '놀란 감독의 지적 허영심을 보여주는 영화다' 등의 좋지 않은 평가들이 많더라고요. 저도 서사적으로 매우 불친절했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을 하면서도, 시간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철학에 맞추어 표현하려고 했다는 관점에서는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과학을 대중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활동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 그리고 기술 자체의 발전보다는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적인 고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충분히 좋은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