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도망쳤다

2020.11.30

by 지노

※오늘의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숨을 못 쉬겠더라고요. 아무리 심호흡을 해봐도 숨이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요즘에 스트레스가 심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었는데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개인 미팅이 내일이고 과제 미팅이 내일모레인데 준비된 것은 한없이 부족해 보이기만 하고, 제대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들고 가면 이전에 배웠던 거고 쉬운 건데 왜 하지를 못하냐는 압박에 버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해내야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순 없지', '어차피 견뎌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들을 하면 참아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아니더라고요. 결국 연구실의 제 자리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비겁하게 제가 마주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나서야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절반을 넘게 잠을 자는 것에 쓰고, 멍 때리며 영상을 보고, 급하게 상담센터를 방문하고자 메일을 보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어디서부터 무너져 내렸기에 제 자신이 육체적으로도 견디지 못할 만큼 스스로에게 가혹한 벌을 내리고 있었던 걸까요?


스스로가 크게 성공하는 것을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을 진심으로 포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욕심내지 말고 잘 견뎌 내기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뛰어난 연구 결과를 내지 못한다고 해서, 학위가 없다고 해서, 깊게 파고들지 못한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 텐데, 그동안 그런 것만을 보고 배워 그것이 전부인 가치라고 믿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어떤 하나를 뚜렷하게 잘할 강인함이나 선천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성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그저 노력하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고, 그러다 보니 어쩌다 운 좋게 그동안의 성과들을 얻게 된 건데 말이죠.


여기서 학위 과정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포기하고 나면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게 뻔하니까요.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가겠죠? 하지만 그때는 제발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나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사실 나는 뛰어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몰입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는 제발 숨이라도 쉴 수 있게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을 그만두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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