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과정 첫 논문을 쓰며느낀 점
2021.02.25
저는 지난주에 본가로 일주일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몸은 연구실을 떠나긴 했지만 사실 마음까지 완전히 떠나지는 못 했는데요. 오늘이 해외저널 제출 마감 기한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널은 기본적으로 제출기간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제출하고자 했던 트랙이 저널 + 학회 트랙이라서 학회처럼 제출 일자가 정해져 있었어요. 생각보다 글이 잘 써져서 다행히 급박하게 제출하지는 않았지만, 휴가에도 쉬지 못하고 머리가 계속 돌아가며 스트레스를 받는 경험을 했습니다. 2저자로서 논문에 참여한 적은 있었어도 제가 직접 논문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갑작스레 논문을 써보자는 한 달 전 지도교수의 코멘트에서 시작된 치열했던 경험에 대해 기록을 남겨 보고자 합니다.
일단 한 줄 요약하자면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평소 휴식을 통한 재충전을 중요시했던 저라서 주말에는 무조건 방에서 쉬며 연구와 선을 그었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주말에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될 수가 없는 일정이었습니다.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단 한순간도 집중을 풀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영어로 논문 작성하랴, 실험하고 데이터 뽑아서 분석하랴, 문헌들 공부하면서 introduction 작성하랴 진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초안을 완성했고 지도교수의 피드백을 두 번 정도 거쳐서 최종 완성본이 나왔습니다. 다 쓰고 나니 제 논문이 정말 한없이 작고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연구적 기여도 부족해 보이고 논리적인 약점도 많이 보였습니다. 물론 연구적으로 유의미한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으니 지도교수가 제출하자고 했겠으나, 역시나 아쉬운 부분이 많이 남는 첫 논문이었습니다.
한 가지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논문에 논리적으로 공격받을 만한 요소는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논문이 무엇인가가 더 나아졌다는 것을 주장하는 글이다 보니 논리적인 공격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그러다 보니 무엇인가를 모르는 것보다는, 어설프게 알아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 아는 척하는 게 더 큰 문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기는 했는데 논문을 쓰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보다 명확해졌습니다. 아닌 건 아닌 거고 모르면 적지를 말아야 하는 게 논문인 것 같아요.
당연히 처음이라 부족한 게 많고 아쉬움이 크게 남겠죠. 짧은 기간에 논문을 완성하여 제출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고려하더라도 연구가 저의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한 문제에 몰입하고 달려드는 것 자체는 재미있는데 연구의 결과물이 저에게 크게 유의미하지 않달까요? 세상에 이름이 남는 것,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것, 학문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한 전문성 무엇하나 크게 끌리지 않습니다. 저는 세상에 이름을 남기기보다 순간의 사람들과 함께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거든요. 발견하지 못한 과학적 사실은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발견할 수 있을 거고요. 더불어 저는 평생을 공학 자체의 문제만을 풀며 살아가기보다는 사람들이 당장 그리고 직접 마주한 문제를 풀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대학원 학위과정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논리를 훈련하는 매우 좋은 트레이닝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이번에 제출한 논문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더더욱 즐거울 것 같고요. 하지만 이 과정을 온전히 제 업으로 삼기에는 거부감이 들었어요.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빡센 삶의 템포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제 삶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싶었거든요. 더불어 이렇게 연구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이 없다면, 연구라는 경험을 삶의 중심으로 가져오는 박사학위 과정은 저에게 불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부정적인 점만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좋은 점도 많았습니다. 저는 영어를 꽤 좋아하는데 그런 게 논문을 작성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더불어 시각적으로 깔끔하고 예쁘게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보니 논문에 들어가는 figure와 함께 제출할 영상을 만드는 데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연구와는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관심사들이 큰 도움이 된 셈이죠. 이렇게 보면 연구라는 행위가 일종의 종합예술이라는 생각이 참 강하게 듭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얻은 즐거움이자 확신은 저라는 사람이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생각들을 표현하는 것에 쉽게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더불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유튜브에 영상을 꾸준히 올리면서 생각보다 즐겁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내 취미나 성향을 넘어 능력으로써의 강점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논문을 쓰면서 그것이 제 강점이 맞는 것 같다는 작은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논문도 결국에는 본인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잘 풀어낸 결과물이니까요. 최소한 하고 있는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데 크게 막히거나 하는 과정은 없었던 걸 보아, 스스로가 이건 꽤 잘할 수 있다고 나름 자부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폭풍 같은 한 달이 지나갔고 다행히 끝맺음을 잘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후속 연구가 정 안 풀린다고 해도 이번에 쓴 논문으로 학위논문은 할 수 있을 테니, 앞으로는 조금 더 편하게 대학원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힘들고 안 풀린다 느꼈던 것이 이제는 조금 풀리려는 걸까요? 어찌 됐던 이제야 홀가분한 마음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스스로에게 정말 고생 많았다고, 이제 조금 쉬어 가자고 이야기해주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