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입학 1년 전의 나에게
2021.03.05
벌써 대학원에 입학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이 딱 1년이 되는 날이네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 바로 과거에 저에게 꼰대 짓하는 컨텐츠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제가 대학원 생활을 하며 느꼈던 점들, 조금 미리 알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던 것들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과거에 저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죠. 워낙 말이 많은 저라서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일단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새로운 조직에 처음 합류하게 되면, 특히나 조직의 환경이 예상치 못했던 분위기라면 처신에 있어 많이 신중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사람 관계와 분위기 파악이 빠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만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비슷한 맥락에서 조직에서 선호하는 구성원들의 표현 방식도 존재할 텐데요. 초반에는 감정이나 생각의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조직이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의 정도와 방식을 파악해도 좋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그 간극이 너무 큰 상황이라면 원치 않는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되도록 다른 구성원들의 표현 방식을 보며 간접적으로 조금씩 체화하는 것이 보다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평소 제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다음으로는 스쿠터는 빨리 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사게 되거든요. 출퇴근길이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문제는 밥을 먹으러 가는 학생 식당도 그만큼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만약 스쿠터로 이동한다면 밥 먹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하루에 1시간 정도 단축할 수 있게 되거든요. 특히나 여름에는 걸어 다니는 길에 그늘이 하나도 없어서 살인적인 더위를 마주해야 하는데, 스쿠터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줍니다. 운동 삼아 걸어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하실 수 있는데, 정말 운동이 필요하다면 빡빡한 대학원 생활에서 아낀 그 시간으로 운동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어요. 더불어 학교 근처에 나지막이 거닐 수 있는 공원과 강가가 있는데, 스쿠터가 있으면 생각날 때마다 큰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다는 것도 꽤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연구적으로 해주고 싶은 말 중 하나는 연구를 잘하는 것과 연차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연차가 높다고 반드시 연구를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건데요. 분명 연차가 올라가며 쌓인 지식과 경험은 있겠지만, 문제를 정의하고 적절한 해결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연구는 단순히 경험만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 쌓인 지식과 경험, 그리고 사실상 시간과는 무관한 탄탄한 논리 전개와 문제 파악 능력, 글을 쓰고 생각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아야만 연구를 잘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시간과 무관한 능력들은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만 얻어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롯이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도 되도록 선배들에게 물어보라는 이야기도 해주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연구보다는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런 것들이 충분하다 한들 연구적으로 유의미한 고민을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대학원 초반에 하고 있는 고민들은 선배들이 지식과 경험의 차원에서 이미 한 번 해봤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물음이 생기면 선배한테 예의를 갖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빠른 답을 구하는 차원에서, 설령 스스로가 생각한 답이 맞다고 하더라도 점검의 차원에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쏟아지는 지식과 경험, 그리고 생각의 요구들에 마주하다 보면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파도 타듯 요동치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잘못하고 있어서 그런 건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러한 감정 기복도 학위 과정의 일부라는 이야기도 해주고 싶습니다. 하루가 아무리 망가진 듯해도, 연구가 아무리 풀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죠.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결코 이전의 나보다 나아질 수 없으니까요. 더 나아지는 노력과 왜 잘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 이상에는, 언젠가 분명히 나아지고 그 힘든 순간이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습니다.
다음으로는 앞선 감정 기복의 이야기에 덧붙여서 규칙적인 생활이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사실 당연한 소리인데, 일정이 빡빡하고 부담감이 큰 대학원 생활에서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가져가는 것에는 참 많은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그 리듬에 몸이 적응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이 고통스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요. 하지만 장담컨대 그렇게 하고 나면 다시 되돌아 가기 싫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한없이 흔들리는 멘탈을 건강한 몸이 단단하게 잡아준달까요? 그래서 운동까지 하면 더 좋다는 이야기도 덧붙이고 싶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달리기를 강력 추천하면서 말이죠.
연구실마다 많이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교수와의 관계에 있어서 사제지간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돈 문제도 얽혀있고, 학생이 연구적으로 성과를 내야만 교수도 성과를 내는 구조이다 보니 단순한 사제지간이 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때문에 스승이 아니라 회사의 상사라고 생각하는 게 더 마음 편할 거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교수가 연구를 지도하는 측면에서도 격려보다는 채찍질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학생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 내야 하기도 하고, 교수라는 직책에 워낙 많은 역할과 업무들이 요구되다 보니 개개인을 감정적으로 크게 신경 쓰기가 어려워서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실 선배가 해 주신 말씀인데 교수가 맡은 역할은 학생들 개개인이 터져 나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푸시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교수도 상사라는 뉘앙스의 말에 큰 공감이 되더라고요.
마지막으로는 비슷한 맥락에서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어차피 모두가 대학원이라는 곳에 개인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온 것이다 보니, 연구실도 지도교수도 소소한 성취에 칭찬을 하기보다는 더 높고 어려운 것을 성취하게끔 몰아붙이는 분위기를 만들더라고요. 나의 주변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그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금 여유롭게,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못해도 괜찮으니 대충 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 연습을 하자는 거죠. 그렇게 스스로를 풀어줘도 어차피 나의 주변이 성장을 강요하는 곳에 있으니까요. 더불어 학위 기간이 최소 몇 년은 걸리는 장기전임을 생각해 본다면, 폭죽처럼 불타오르는 것보다는 장작불처럼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선물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정리해보았는데요. 사실 대학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이야기는 제가 앞으로 사회에 나아가 살아가게 될 때도 참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온 저로서는 대학원이 사회생활 이전에 참 좋은 트레이닝이 된 것 같아요. 물론 대학원과 사회의 구조가 꽤 다르긴 하지만 이 정도의 경험을 쌓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글이 과거의 저에게 하는 이야기 이긴 하지만, 진짜 그때 저에게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저는 듣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겁니다. 그래도 이걸 알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무의미한 아쉬움들을 좀 담아 보았어요. 왜냐하면 아쉬움은 무의미할지라도 분명 1년간 치열했던 저의 노력과 감정의 결과이니, 그 자체로 뿌듯해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 들어 스스로가 참 고생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고생 많았으니, 조금만 더 힘내서 잘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