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으로 성공할 수 없어도

2020.12.13

by 지노

※오늘의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것만으로 크게 성공할 만큼 그 재능이 뚜렷하지는 않죠.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은 특출난 재능을 갖춘 사람을 동경해 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는 현시대의 슈퍼스타들을 보면, 그들이 각자 재능을 제대로 꽃피워 세상에서 멋지게 성공하는 모습은 질투 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넷플릭스의 '퀸스 갬빗'은 그러한 특출난 재능을 가진 천재 체스 플레이어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이유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의 매력 자체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드라마는 단순한 체스 플레이어로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성숙한 한 사람으로서 성장기를 매력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체 흐름 자체는 다소 뻔할 수도 있지만,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심리상태 그리고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몰입감 있게 표현하는 것에서 큰 매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퀸스 갬빗의 주인공처럼, 미디어 속 슈퍼 스타들처럼 특출난 재능이 없다면 재능으로 성공할 수는 없는 걸까요?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이 넓은 세상에서 항상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퀸스 갬빗에서도 그런 인물들이 꽤 나옵니다. 분명 체스에 재능이 있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최고가 되지 못해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 말이죠. 극 중에는 '최고가 되려면 끝없이 파고들어야 한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대사도 나옵니다. 재능으로 세상과 부딪쳐 성공하고자 애쓰는 것은 그만큼 잔인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재능에는 성공보다 더 중요한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재능을 꽃피우는 것입니다. 재능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발휘하는 것 그 자체 말이에요. 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재능을 발휘하는 순간에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고 세상 그 무엇보다 큰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능이라고 해서 반드시 거창해야 하고, 남들보다 뛰어나서 직업으로써 삼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저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한다고 느끼는 것이면 충분하죠. 퀸스 갬빗에 나오는 다른 체스 플레이어들의 재능이 주인공처럼 특출나지 못하다고 해서 그들이 두는 체스마저 의미 없지는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특출난 재능이 있다면 굳이 애쓰지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만개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재능을 업으로 삼아 먹고살 가능성이 높아 계속해서 가꾸어 갈 테니까요. 다만 그렇지 않다면 따로 특별히 신경을 써서 재능을 가꾸어주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먹고사는 본업과 재능을 발휘하는 것에는 크건 작건 간극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죠. 물론 그러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다만 그렇게만 살아가기엔 너무 아쉬울 것 같아요. 어차피 우리들 모두 이 세상에 정말 짧은 순간만을 머무르다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순간만이라도 각자의 모습과 재능을 온전히 꽃 피우는 것이 무엇보다 충만하고, 의미 있고, 설레는 일이 아닐까요?


사실 제가 지금 대학원에서 하고 있는 연구는 제가 생각하는 저의 재능과 꽤나 큰 괴리가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잘 짜인 영상이나 글을 보면 늘 새로운 생각과 감정이 예민하게 솟아오르거든요. 대학원에서의 이성적 사고와 치열한 논리의 발전과는 약간 거리가 있죠.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는 예민함을 통해 만난 순간을 정리하여, 사람들과 나누거나 글이나 영상으로 표현하는 순간에 가장 자연스럽고 황홀하게 몰입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제가 저라는 사람을 제대로 꽃피우는 거죠. 일과 성공이라는 잣대로 보았을 때는 그 모습이 아름답지 않을 수 있어도, 제가 가장 자신 있고 즐거운 무엇인가로 활짝 만개하는 것처럼 충만한 순간은 또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어리고 시간이 충분하기에 그 간극을 좁혀가는 노력을 하기는 하겠지만, 반드시 그 간극이 좁아지지 않아 일이 그저 일로서만 남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곳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며 얻은 것들을 저라는 사람을 피워내는 자양분으로 삼으면 될 테니까요.


아인슈타인은 모든 사람이 천재라고 말했습니다. 단지 제대로 된 천재성의 기준을 찾지 못해 스스로가 평범하다고 믿고 살 뿐이라고 했죠. 저도 사실은 무언가 돈을 많이 벌고, 한 분야의 최고가 되고, 유명해져야만 재능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보편적인 성공을 위해서 내가 먹고사는 것을 위해서 쓰여야만 재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면 정말 좋겠지만, 그러기 어렵다면 그냥 나의 재능이 세상에 꽃 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자체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이어도 좋고 그러지 않아도 좋으니, 저의 모습 그대로를 꽃피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그것만큼 황홀하고 설레고 기쁜 순간을 찾지 못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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