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불안함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2021.01.06

by 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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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생각과 감정이 꼬리를 물며 잘 이어지는 편입니다. 평소에는 그냥 저의 특징 중 하나이지만, 불안함이 엄습해 올 때는 그것에서 잘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심리적으로 크게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에는 난생처음 과호흡 증상을 겪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지금 제가 있는 대학원처럼 압박이 비교적 심한 곳에서는 그런 어려움이 더욱 증폭되는 것 같습니다.


역시 사는 게 그리 만만하지는 않은지 오늘도 어김없이 그런 감정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발표를 해야 하는 랩 미팅이 미뤄졌고 이전에 준비한 자료대로 발표하면 될 줄 알았는데, 발표 자료의 내용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됐어요. 랩 미팅에서 발표해야 하는 내용 중 제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었고, 그러다 보니 실험 결과도 더 잘 나올 수 있었는데 그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랩 미팅에서 크게 혼날 만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현재 연구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제에 하나 참여하고 있는데, 과제에서 진행되는 내용이랑 연구 주제랑 같아서 사실상 과제 미팅에서의 피드백이 랩 미팅의 피드백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과제 미팅에서 별다른 피드백 없이 그냥 넘어갔거든요. 최소한 못 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도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그렇게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 처음으로 싫증이 났습니다. '나는 왜 또 불안함을 느끼는 거지?', '대체 뭐가 문제야?' 스스로를 다그치거나 비하하는 말이 아니었어요. 싫증이 난 대상이 제 자신이 아니라 불안 그 자체였던 거죠. 그리고 그 질문의 순간이 처음으로 불안을 느끼는 제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순간이었습니다.


난생처음 느껴 본 싫증은 도대체 왜 불안해하는지에 대해 답하기 위한 냉철한 분석으로 이어졌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아닐 뿐 잘 해내지 못해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때문일까요? 아니면 혹시라도 받아 내야 할 부정적인 피드백이 주는 위압감 때문일까요? 그 무엇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평소 굳이 인정받기 위해서 발악할 필요가 없다고, 부족하다는 피드백이야 받아들여서 성장하는 원동력으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해왔던 저니까요. 수년간 제가 관성적으로 그래 왔듯, 지금의 순간도 불안함에 휩싸여 제대로 된 나의 모습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었습니다.


결국 허상이었습니다. 실체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저 제가 만들고 증폭시킨 불안이라는 껍데기였습니다. 그리고 설령 그 불안이 실체가 있었다 하더라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그 실체는 저라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니까요. 설령 연구를 정말 못하는 상황이어서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과 험한 말을 마주해야 한다고 해도 말이죠. 당장 그 순간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스스로가 최선을 다해온 사실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도, 지금보다 앞으로 잘 이겨내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처음으로 불안함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그렇게 감정이 잦아들자 발견한 문제점도 해결하여 더 좋은 발표를 할 수 있었고요.


그동안 나름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보았는데, 오늘처럼 스스로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 불안의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만큼이나 도움이 된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 뿌듯하기도 했고 드디어 답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불안함이 또다시 닥쳤을 때 이러한 과정을 똑같이 반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긴 뭐 그러면 어떤가요? 결국 이것도 작은 불안일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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