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나 할 것이지 영상은 왜 만들어?

2021.02.10

by 지노

※오늘의 글은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전공으로 기계공학을 선택하여 아직까지도 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제가 본가에 휴가를 내고 도착하면 항상 방문하는 곳이 있는데요. 바로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는 미술관입니다. 갖추어진 공간과 전시물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항상 새로운 영감과 상쾌한 기분 전환을 선물해 줍니다. 그래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계속해서 방문하게 돼요.


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미술관의 전시가 전부 바뀌어 있었습니다. 더불어 미술관 내부에 휴게공간이 새로 만들어져 잠시 머물렀는데, 우연찮게 꺼내 든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질 않는데 카이스트에서 예술과 과학이라는 주제로 했던 전시에 대한 책으로 기억합니다.


과학자들은 객관적으로 누구나 합의하는 결론을 찾으려고 하는 반면, 예술가들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과학적 발명이나 발견은 바로 그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찾아지고 만들어질 수 있지만, 만약 미켈란젤로나 피카소가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그러한 작품들이 절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도 동일하게 재생해내지 못할 독창성이 미학의 본질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저 문장에 가슴이 뛴 걸 보면 저는 독창적이고 싶다는 욕심이 꽤 강한 편인 거 같습니다. 어쩌면 그 욕심이 제가 공학에 갖는 일종의 회의감이자 아쉬움일지도 모르겠어요. 굳이 제가 아니어도 공학은 누군가가 발전시키고 해낼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물론 그래서 밥 벌어먹고 살기 편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맞습니다. 누구나 합의하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갈 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공학일 테니까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그런지 이왕에 일을 해서 벌어먹고 사는 것, 남들이 아니라 저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통해 살아갈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일단 시작한 대학원 생활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연구에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쏟고는 있지만, 그러한 생각이 사라지질 않아 늘 마음 한편에 아쉬움과 찝찝함이 남아 있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원 과정 이후의 진로에 대한 고민도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좀 더 독창적인 행위를 업으로 삼아도 괜찮을지, 아니면 그런 욕구와 일은 분리한 채 살아가는 것이 나의 분수에 맞을지 말이죠.


'연구나 제대로 하지 영상은 왜 만드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에서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갑갑해서 그런 거죠. 연구로는 채울 수 없는 갑갑함이 느껴져 이렇게 영상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더불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제 삶의 작은 실험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영상에 보여주는 반응들이 그것에 대한 작은 실마리가 될 테니까요. 그리고 애초에 저라는 사람이 연구를 하는 것처럼, 하나에만 집중해서 골똘하게 고민하고 사색하도록 태어난 것 같진 않습니다. 학문적인 지식보다는 매사 실제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호기심이 더 많고 경험하고 느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연구자로서는 다소 부끄러운 욕구를 영상을 만들며 채워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지난 1년간 만들어진 영상들을 보면 스스로가 많은 위로를 받았고 꽤 큰 뿌듯함도 느끼니까요.


그래서 영상에 더 욕심이 날 때가 있고, 보다 깊은 고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나의 개인적인 기록의 의미를 제외한다면, 유튜브에 올리는 나의 영상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메시지와 투박한 편집이 아주 미천한 예술성이라도 갖추고는 있을까?' 하는 고민들 말이죠. 하지만 일단 제 영상의 예술성에 대한 고민은 잠시 내려두려고 합니다. 중요한 고민이지만, 당장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만한 난이도가 아닌 것 같거든요 ㅋㅋ 우선은 그저 지금껏 했던 것처럼 마음 가는 대로 꾸준히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른 의미로 독창적이고 싶은 대학원생에게 작은 위로를 주었던, 오늘 전시에 방문하여 만날 수 있었던 박래현 작가님의 글귀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마음속에 가질 수 있는 예술성이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인간의 감정 속에 어느 귀한 흐름이 움직일 때 얻을 수 있는 것. 이것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예술의 세계가 우리 마음에 가져다주는 어느 표지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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