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8
여러분들은 연구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사실 굉장히 지적이고, 날카롭고, 왠지 모를 고상함이 강하게 떠오릅니다. 더불어 무언가 사회와 약간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흔히 말하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학문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는 이미지가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연구를 하며 느끼는 고달픔이나 어려움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머리는 많이 아프겠지만 그 고통이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는 느낌도 많이 듭니다. 세상 살아가는 것과 떨어져서 또 하나의 세상을 구축하는 행위 같기도 하죠.
어느 정도는 맞는 이미지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선배님께서 연구를 '인텔리한 노동'이라고 표현하셨거든요. 지적인 결과물을 내놓기 위한 여러 가지 노동의 집약체라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그 지적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이 꽤나 낭만적이다 보니, 다들 연구를 하는 것에 어느 정도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분야의 경우 과학이라는 객관적인 현상과 언어를 바탕으로 한 공학에 대한 탐구이니, 그 부분에는 연구에 그다지 큰 흥미가 없는 저로서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누군가는 저처럼 뚜렷한 동기부여 없이 선택한 길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죠. 학문을 탐구하는 직업이다 보니 낭만도 있을 거고, 보통의 경우 사회적 지위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결국 연구도 다 먹고사는 일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분명 머리를 꽤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사회와 동떨어진, 다른 일들과 독립적인 고상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그렇기에 개인으로서 연구라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에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자신의 일이 다른 일보다 더 가치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물론 이건 연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모든 종류의 일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는 합니다. 다만 연구라는 행위가 이런 생각에 빠지기 보다 쉬운 편인 것 같아요.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장비나 재료가 필요하지 않은 학문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건비는 필요하죠. 결국 그 돈을 받을 수 있는 근거는 사회의 수요, 시장의 논리에 기반합니다. 사회나 기업이 필요로 하지 않는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을 위한 연구는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죠. 결국 독립적인 연구자들도 프리랜서처럼 과제와 돈을 수주해와야만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기초학문의 경우에는 사회의 수요나 자본의 논리와는 상관없이 투자를 받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피할 수 없는 명제는, 세상이 연구를 하는 사람들로만 가득 찬다면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연구를 한다고 해서 우리가 평소 먹는 농작물이 재배되거나, 물을 마실 수 있거나, 따뜻한 옷을 만들거나, 편히 움직일 수 있는 대중교통을 직접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연구자가 살아가는 생활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어디까지나 연구로 인한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연구라는 행위가 직접적으로 창출해 낼 수 있는 실물적인 가치는 극단적으로 보면 논문 이외에는 없으니까요.
연구의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분명 사회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어느 분야의 연구든지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단지 헛똑똑이처럼 연구가 다른 일들보다 더 가치 있다는, 단편적이고 부끄러운 생각은 옳지 않다고 느낄 뿐입니다. 다른 일의 가치를 깎아내려야만 연구라는 일이 존중받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니까요. 저는 모든 일에는 분명 각각의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때문에 각자의 일에 존중을 보내면서도, 연구라는 행위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