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0
학부생 시절 한 교수님께서 밥을 사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보통의 대학생들이 그렇듯 저도 교수님께 진로에 관한 고민과 생각들을 털어놓으며 후회하지 않는 선택에 대한 조언을 구했었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스스로에게 집요하고 솔직하게 물어보면 생각보다 뚜렷한 답이 나온다.' 물론 그러한 방식으로 답을 구하기 위한 전제 조건도 있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묻고 대답해야 해.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 완벽하게 솔직하기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야'
달리기나 푸시업 턱걸이와 같이 몸을 쓰는 운동을 하다 보면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꼭 찾아옵니다. '이 정도면 됐지', '괜찮지', '이쯤에서 그만둬도 충분한 거야'. 실제로 몸이 한계치까지 도달해서 그런 느낌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그 순간에서 조금 더 하는 게 위험한 순간도 있지만, 더 해내야만 의미 있는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는 순간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찌 보면 항상 객관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내리기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내 몸이라도 내 몸 상태를 100% 완벽하게는 알 수 없고, 그 순간에 외부적인 요인들이 너무나도 많이 개입하니까요.
하지만 항상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는 없어도, 항상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속이지 않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정말 할 수 있는데 단순히 하기 싫다는 마음 때문에 하지 않는 건지, 나의 감정을 다 제외해 놓고 보더라도 더 이상 운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인 건지는 나 자신이 분명 알고 있으니까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면 정말로 진솔한 답변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운동의 기준을. '객관적으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로 두기보다는 '솔직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는가'로 두고 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나 적용되는 객관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당연히 비단 운동을 할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제가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연구나 앞으로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결과가 좋아서 잘한다는 평가를 받거나, 내가 그것에 있어서 개인적인 성취감을 느끼는 건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오롯이 내가 아닌 외부의 요소와 기준들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되는 것일 테니까요. 따라서 첫 번째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을 만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어내고자 노력했는가'일 것입니다. 최소한 스스로를 속이지는 않겠다는 거죠. 어차피 모든 선택과 기준들이 불확실함을 가지고 있다면, 결국 나 스스로 온전히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모든 행운이 나를 배신했을 때마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이니까요.
앞으로 제가 얼마나 더 좋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길게 보아 제가 사회적으로 어떤 성공을 일궈낼 수 있을지는 더더욱 모르겠고요. 그러한 사회적인 요소들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면 오롯이 통제할 수 있는 제 자신만을 붙잡아 가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어떠한 선택을 하던 제 자신에게 솔직하고 떳떳할 수 있는 결정이라면, 삶을 살아갈 나 자신에 한해서 확신을 갖고 나아가는 방향이라면, 최소한 후회는 없을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