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과정을 포기하는 사람들

2021.03.27

by 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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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분께서 석박사 통합과정 중에 석사로 졸업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다 가끔 마주치며 인사를 드리는 정도의 사이여서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저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놀라워 하기보다는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대학원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던 대학 신입생 시절에는 동기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아무리 못해도 박사학위는 그냥 버티면 받는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했었습니다. 실제로 버티면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기는 합니다만, 버티는 강도가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피부로 와 닿지 않았던 강도라는 것에 큰 차이가 있었어요.


대학원 진학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보니 만약 해외 유명 대학으로 유학을 갈 수만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유학을 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이 있는 것이니까 가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와서는 유학이 국내 대학원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선택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낯선 땅, 낯선 문화, 낯선 사람들도 쉽지 않을 텐데 그 속에서 대학원이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견뎌내야 하니 말이죠. 분명 좋은 점도 많겠지만 힘든 점도 많을 겁니다. 지금 유학에 나가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눠 보면 아무도 모르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결국 자기 자신이 그 과정을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는 슬프게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사 모든 일이 직접 부딪치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대학원은 특히나 변수가 많은 경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지도교수, 연구실 사람들 분야, 졸업까지 걸리는 시간 연구주제를 잡고 잘 풀어 가는데 필요한 스스로의 능력과 운 등등 너무나도 복합적인 것들이 얽혀 있는 곳이다 보니 각자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대학원 과정 중에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무엇이 남을까?'이지 않을까 싶어요. 당장 석사과정을 하고 있는 제 자신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니까요. 하지만 막상 대학원 생활을 접하면 그런 고민조차 할 틈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뚜렷한 이유 때문이라기보다는 관성 때문에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나 주변 사람들이 대학원을 많이 갔을수록 그들의 연구성과와 끝내 받는 학위가 어느 정도는 당연히 보일 것이고, '나도 저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왜인지 모를 당위성이 생기니까요.


박사과정 중이었다가 석사만 받고 졸업하거나, 학위를 받지 않고 자퇴를 하는 분들이 꽤 많이 계십니다. 그러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그분들께서는 일종의 패배감을 안고 떠나시는 않으셨을까요? 누구나 대학원에 처음 들어올 때는 꽤나 거창한 꿈과 포부를 안고 있으니까요. 간신히 학위과정을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분들의 결정과 앞날을 감히 응원해 드리고 싶습니다. 학위과정을 끝내지 못했다고 해서 목표한 바를 성취하지 못했다고 해서 삶의 패배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저 너무나도 특수한 대학원에서의 삶이 맞지 않는다는 중대하고도 담대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에 작은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거대한 삶에 비추어 본다면 학위는 그저 사소한 징표 중에 하나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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