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말에 처음으로 써서 제출한 논문이 게재 거절당했습니다. 논문을 한번 써 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어서 사실 결과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막상 거절 메일을 받고 나니 솔직한 심정으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요. 제출한 논문에 대한 리뷰도 도착을 했는데, 아직 정신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 상세히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대략 훑어는 보았는데, 해당 저널에 출판하기에는 이론적 발전의 정도가 부족하다는 코멘트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연구를 한 지 1년도 안 된 결과물을 어쨌든 논문으로 마무리했다는 것 자체가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참 괴물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교롭게도 발표 전날 같은 분야에서 엄청나게 잘하는 연구자의 CV를 보게 되었거든요.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 동안 엄청나게 많은 논문과 수상을 보여주는 문서에서 위압감과 경외심은 물론이고 박탈감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순간 떠오르는 감정보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이 지난 후에 스스로에게 남아있는 감정의 여파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멋있다는 생각이 들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도전하고 노력해서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좌절감과 허탈함을 느끼거나 '나는 저렇게 되기 어려울 텐데 그 과정에서 얻어갈 것들이 얼마나 나에게 큰 의미가 있을까'와 같은 고민을 더 깊게 할 수도 있겠죠. 저의 경우에는 후자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구라는 행위가, 최소한 현재 제가 몸담고 있는 이 분야에서 연구를 하는 게 저에게는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람마다 성장하기 위한 매개체와 방식은 모두 다를 겁니다. 저의 경우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지식을 통한 학습이나 혼자만의 고민을 통해 성장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연구라는 것이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진행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연구는 혼자서 해내는 게 더 많아야 해요. 그래서 잘 안 맞는다고 느낍니다. 재능이 크게 있는 것도 아니고, 재능이 없다면 차근차근 성장하는 과정이 즐거워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당장은 박사과정을 밟을 생각이 없습니다. 저널에 게재 거절당한 일은 아쉽게 됐지만, 덕분에 많은 고민들이 꽤나 깨끗하게 해결된 느낌도 없지 않아 있네요.
저는 공학과 과학이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공학과 과학을 본질 가까이서 바라보았을 때 무언가를 직접 만들거나 발견해 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걸 대학원 생활을 하며 뼈저리게 느끼고는 있지만, 반드시 그렇게 하기 위해서만 공학과 과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학과 과학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파생적인 가치 또한 꽤나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 보니 대학원 졸업 직후의 진로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현재의 순간에서 제가 반드시 전통적인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를 이어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공학과 과학을 꽤나 깊게 이해하고 경험했던 기획자가, 디자이너가, 경영자가, 강연자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장 주어진 일들을 내팽개치고 어중간하게 졸업할 생각은 없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논문을 한번 마무리해보았다는 것은 정말 큰 성과이고, 아직 진행 중인 연구를 더 발전시켜 마무리할 수 있는 가능성과 시간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졸업 전에 한 번 더 다른 저널에 도전하고 학위과정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당장 연구의 길을 계속해서 걷지 않더라도 언젠가 다시 걷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그러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작한 것은 끝까지 제대로 마무리해야 끝 맛이 쓰지는 않을 테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