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어 수업>
우연히 페르시아어책을 손에 넣게 된 유대인 질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라 페르시아인이라며 살려달라고 한다. 질이 가게 된 수용소의 독일군 장교 ‘코흐’는 마침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 했다. 얼떨결에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페르시아어를 가르치게 된 질. 자신이 페르시아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발각되는 순간, 목숨을 잃게 된다. 심지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예고편을 보는 순간, 영화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영웅'도 '아바타'도 보고 싶었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더 궁금했다. 혹시나 싶어서 찾아봤더니 역시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헤이리 시네마에서 상영중이었다.
평일 오후 7시. 헤이리 시네마에는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 다른 관람객이 오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다행히 다른 사람들이 와서 4명이 오붓하게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가 시작될 때, 음악부터 인상적이었다.
살짝 소름 끼치고 스산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잘 표현되는 음악. 영화의 분위기를 시작부터 잘 알려주었다.
수용소에 가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살아난 질. 페르시아어를 안다는 거짓말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전혀 낯선 나라의 언어를 안다고 밝혔는데 그걸 가르치는 역할까지 해내야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내 머리가 다 아파왔다.
질은 단어를 만들어 내야 했고 또 자신이 멋대로 만들어 낸 단어를 기억까지 해야 했다. 그러던 질은 단어를 만들기 위한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 낸다.
유대인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영화는 질과 코흐의 관계에 집중한 듯 보인다. 코흐는 질에게 페르시아어를 배우면서도 질이 페르시아인이 아닐거라는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다. 갑자기 툭툭 질문을 던져 질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질은 설상가상 수용소에 있는 독일군들의 미움을 산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질에게 크나큰 위기가 찾아오고 기적처럼 질은 그 위기를 넘긴다. 코흐의 신임을 얻은 질은 어느새 그의 말동무가 되고 코흐는 독일군들의 온간 질시와 비난 속에서도 질을 가까이 둔다. 아니, 노골적으로 편애하고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기에 이른다. 덕분에 수용소의 유대인들이 어딘가로 가서 목숨을 잃고 또 다른 희생자들이 새로 오는 일이 무수히 반복될 동안에도 질은 그대로 목숨을 유지한 채 한 수용소에 남게 된다.
질은 살기 위해 페르시아어를 계속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코흐는 어느새 페르시아어에 푹 빠져서 독일군 장교가 아닌 새로운 자신의 미래를 꿈꾸기에 이른다.
그렇게 계속될 것만 같았던 수용소의 시간은 그러나 독일의 패색과 함께 끝을 맞이한다.
코흐는 질을 살려주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탈출한다.
후퇴하며 다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독일군,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질은 수용소 실태를 조사하던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영화는 독일군의 만행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이야기는 질과 코흐의 관계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거리가 독일군의 만행을 더 도드라져 보이게 만든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가두고 때리고 죽이는 '광기'가 아무렇지 않은 독일군들의 일상이,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긴 힘없는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그 모습이 일상처럼 보여서 더 끔찍했다.
독일군 장교 코흐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표현처럼 질에게 애정을 쏟으면서 '멀쩡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마지막 장면이다. 일종의 반전이겠지만 놀랍다기보다 숙연해 지며 영화가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 진다.
주연을 맡은 배우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독일 장교역을 맡은 라르스 아이딩어의 연기가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