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아벤트' 매일 저녁을 축제로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를 읽고

by Jino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렴요, 이야기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을 보자마자 홀린 듯 주문하고 또 홀린 듯 읽었다.


작가는 독일에 살면서 주로 철학과 관련된 책을 집필 중이다. ‘어떤 단어가 존재하는가를 통해 그 사회를 알 수 있고, 여러 단어가 있다면 어느 상황에서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쓰는가를 통해서도 그 사회를 볼 수 있다’며 ‘한 단어 속에 든 너른 세상을 볼 수 있는 책, 결국은 우리의 삶과 인생에 대한 책이 되기를 바란다.‘는 서문에 공감했고 또 내용을 기대하게 했다. 독일에서 쓰는 단어들을 통해 독일을 알아가는 동시에 한국과 비교해 보게도 되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알아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덕분에 읽고 난 뒤의 여운이 꽤 깊은 책이기도 하다.


독일인들은 평일 하루 일을 마감할 때 ‘파이어아벤트 Feierabend’라는 인사를 나눈다고 한다. 축제나 파티의 의미가 담긴 파이어 Feier와 저녁이라는 뜻의 아벤트 Abend가 합쳐진 말이다. 너무 멋있지 않은가. 작가는 이 단어를 ‘아름답다’고까지 생각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렇게 느낄 것 같은 단어이다. 하루의 일을 마칠 때 사람들이 서로에게 축제 같은 멋진 저녁을 보내라는 덕담을 하는 셈이다. 없던 여유도 생길 것 같은 인사다.


‘gefallen(게팔렌)’이란 동사도 독특하다. ‘무엇이 마음에 든다’는 뜻의 gefallen은 쓰임이 독특하다. ‘Maria gefallt Ludwig’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루트비히를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리아가 루트비히 마음에 든다는 표현이다.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먼저 나오는 문장 구조를 만드는 단어다. 작가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문장이 '나는' 으로 시작하지는 않는다는 깨달음’을 안겨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 ‘아르바이트’는 예전에는 ‘몸을 써서 하는 힘들고 수고로운 일’을 의미했는데 어원을 알고 보면 슬프다. 옛 인도 유럽어의 'orbh-'라는 어근은 '아비가 없는'이라는 뜻이고, 여기에서 고아라는 뜻의 영어 단어 orphan과 노동이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 Arbeit가 각각 유래했다고 한다. 그럼 아르바이트는 부모 없는 아이들이 힘든 일을 많이 하면서 생긴 단어일까? 어원도 기가 막힌 ‘아르바이트’는 나치에서 더 악랄하게 쓰인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장이었던 루돌프 회스의 제안으로 수용소 정문에 “Arbeit macht frei(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글귀를 붙였던 것이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이 문구가 금지되었다.


독일이라 맥주와 관련된 표현도 많다. 비어야케라는 표현이 재밌는데 맥주를 뜻하는 비어 Bier와 재킷이나 점퍼, 코트를 뜻하는 야케 Jacke가 합쳐져서 술을 마신 뒤 취기가 올라 몸이 후끈해지는 느낌에 쓰인다. '비어야케를 입었다'는 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술 마셔서 몸이 후끈해진다'라는 직접적 표현만 있는 사회와 '비어야케를 입었다'는 은유적 표현을 즐겨 쓰는 사회는 그 온도가 다르지 않을까.


독일에서 건배할 때 즐겨 쓰는 단어 'Prost'는 '사용하다, 유익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prodesse가 변화한 prosit(좋기를, 유익하기를)에서 왔다고 한다. 건배하는 잔 한 번 부딪힐 때마다 상대가 건강하기를, 모든 일이 순조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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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세계인형박물관(www.worlddoll.net) 학예사 / <인형의 시간들(바다 출판사 발행)> 저자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바다출판사 발행)>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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