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형상 빚기...그 간단치 않은 역사

톰 플린의 <조각에 나타난 몸>을 읽고

by Jino


매일 세계 여러 나라의 인형을 보고 인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부하다 보면 ‘인형이 대체 뭘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형’은 물질적 기준으로 보자면 무생물, 즉 ‘물체’의 영역에 있다. 하지만 인형을 향한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면 이 인형을 과연 무생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싶다.


사람들이 자신을 닮은, 혹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 동물이나 상상의 존재라고 하더라도, 인형을 연필이나 책상 같은 물체로 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물의 속성은 물체이지만, 사람들의 애정 어린 시선과 생물과의 동일화 과정을 통해 점점 어떤 형태의 생명성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인형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조각이나 로봇과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다. 많은 조각이 사람, 혹은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 대해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된 책 <조각에 나타난 몸>(예경출판사)은 그래서 흥미로웠다. 그림을 중심으로 한 미술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래도 전시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접하긴 했지만 조각에 대해서 제대로 무언가를 알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19세기 미술 전문가 톰 플린이 쓰고 미술사학을 전공한 김애현 님이 번역한 이 책은 절판이어서 중고로 구입했다.

조각과 가끔 등장하는 인형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고 신화 속 피그말리온 이야기에서부터 현대 작가의 멀티미디어 작품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변천사들, 그리고 그 변천사 속에 숨어 있는 인문학적 고찰, 풍부한 작품 사진은 지식을 채워주는 것을 넘어 나의 세계를 한층 더 확장시켜 주었다.


사람의 몸을 조각하는 것, 그 간단해 보이는 작업이 꽤 오랜 시간 많은 제약 아래 놓여있었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맹목적 숭배가 조각의 채색을 막았다는 사실은 인류문화사의 많은 부분을 되돌아보게도 한다.


미술, 그리고 조각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나로서는 이 글에서 대체로 책 내용을 요약하고 조금의 이야기를 덧붙이거나 시각적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자 한다.


서문 - 밀랍조각, 인형 그리고 살아 있는 혼


조각의 신비에 대해 언급할 때 빠지지 않은 것이 키프러스의 왕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다. 여인들을 믿지 않는 피그말리온이 상아로 조각한 여인상과 사랑에 빠져 비너스에게 생명을 불어넣게 해달라고 했고 결국 조각은 여인 갈라테아가 되었다. 조각돈 신체가 인간을 정확하게 재현하다 못해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발전하는 과정인 것이다. 작가는 신체를 삼차원으로 재현해 온 역사는 인간 존재에 대한 유동적인 태도까지 망라하는 포괄적인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본다.

Pygmalion adoring his statue (1717),Jean Raoux (1677–1734), Public Domain

철학자 데카르트가 ‘프란신(Francine)’이라는 자동인형을 만들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일면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

프란신이라는 이름은 데카르트 딸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1635년 프란신을 낳았는데 프란신이 5년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데카르트는 딸을 잃은 슬픔 때문에 딸과 닮은 기계인형(오토마타)을 만들었다. 데카르트는 인형을 딸로 여기고 배에 싣고 여행했는데 선원들이 그 인형을 ‘악마의 물건’으로 생각해 바다에 던졌다고 한다. (‘데카르트의 아기’란 책이 2025년 출간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도 하는데 데카르트를 두고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데는 데카르트가 동물과 인간의 신체를 기계적 원리로 설명한 철학자였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호프만의 소설 <모래인간>에 등장하는 올림피아, 매리 쉘리의 프랑켄 슈타인, 빌리어스 드 릴리 <미래의 이브>에 등장하는 헤이데일 등은 인간의 형상으로 생명을 얻게 된 인물상이다.


고대 이래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거대한 인물상을 만든 경우는 종종 보게 된다. 기원전 5세기 명장 피디아스는 높이 13미터가 넘는 아테나 파르테노스 여신상을 만들었다. 이는 페리클레스 치하 아테네 시의 막강한 군사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작가는 ‘인물상이 거대할수록 언젠가 무너진다는 것은 상징적인 사실이다. 무너진 기념비만큼 분수에 넘친 정치적 야망의 결말을 더 생생하게 표현해 주는 기표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인체의 조각은 시대에 따라 또 그 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진다.


밀랍 조각과 채색된 초상 석고상은 영국 왕가의 장례식이나 사람의 신체가 훼손된 경우 중요한 역할을 해오곤 했다. 청교도 정치가이며 호민관인 올리버 크롬웰을 그대로 닮은 석고두상은 1658년 토머스와 애이브러험 사이먼 형제에 의해 제작됐다. 크롬웰은 시신은 1658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비밀리에 매장되었는데 그를 조롱하는 장례 행렬은 이 석고두상을 보고 만든 올리버 크롬웰의 밀랍조각상을 가져가 1660년 왕정복고 이후, 밀랍 조각상의 목을 잘라 내건 뒤 화형했다.


밀랍 조각가로 유명한 튀소 부인의 삼촌이자 스승인 퀴르티에 박사는 프랑스혁명에 동조한 오를레앙 공작의 밀랍조각을 만들었는데 1789년 “오를레앙 공작을 내놓아라!”라는 프랑스 군중의 요구에 밀랍조각을 내놓았고 군중들은 그것을 들고 야유하며 시가를 행진했다.


미술사가 데이비드 프리드버그는 <이미지에 나타난 권력상>에서 초상조각을 ‘처형’하는 것은 어떤 이가 초상조각의 형태로 숭배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통해서 불명예를 얻는 것도 가능하다는 가정하에서 자행되는 일이며 실재의 신체가 받았을 대접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영국에는 조지 4세를 뜬 밀랍상이 있는데 이 아기 모형은 샬로트 왕비가 자신의 아들에게 품었던 애정의 상징이기도 하다.


20세기에 조각의 경계는 이동과 확장을 거듭해 왔다. 비엔나 출신의 미술가인 오스카 코코슈카가 1919년에 자신을 위한 피동적 반려로서 괴기한 인형을 만들었다. 코코슈카의 마네킹은 독일 작가 한스 벨머가 1930년대에 만든, 관절이 기형적으로 이어진 인형들, 혹은 '독신자 기계들'이라고 알려진 일련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다.


신체는 금기에 도전하고 권력주조를 타파하려는, 때로는 미화되고 치켜졌다가 때로는 경시되는 다채로운 형식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

삼차원으로 재현된 신체의 역사가 이 책의 주제이다


고대 : 우상, 신화 그리고 마법


고대가 시작될 무렵부터 조각된 신체는 신화와 전설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모호한 존재로서 등장해 왔다. 그리스의 전설적인 미술가이자 발명가인 다이달로스가 만든 조각상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묶어놓아야 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레플리카. 출처 : 세계인형박물관 (오른쪽).


2만 5천 년 혹은 3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보면 이 시대부터 인간의 몸은 재현되어야 할 중요한 주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물상들은 어머니인 여신(대모신)에 대한 최초의 성스러운 재현들, 위대하고 모든 것에 우선하는 모계 질서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초창기 인류의 작품으로 탄생과 재생의 신비를 품고 있다.


그리스 에게 연안 키클라데스 군도에서 발견된 기원전 3,00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키클라데스 여인 조각상은 채색 장식이 거의 사라진 얼굴에 희미한 윤곽이 남아있다. 마치 죽었거나 자는 것처럼 양팔을 접고 누운 모습을 하고 있어 고대 이집트에서 망자와 함께 묻힌 샤브티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을 낳고 있다.


우리가 아는 그리스 조각은 대리석이나 청동 재질이지만 고대 그리스 초기에는 조아나 Xoana(단수로는 조아논 Xoanon)라고 하는 목각 조형물이 있었다. 흑단, 올리브, 사이프러스, 삼목, 참나무 또는 주목으로 만들어진 조아나는 투박한 형태지만 때로 진귀한 재료들로 치장되기도 했다. 기원전 7세기 중엽의 초기 석조 조각도 조아나의 목각 기법 흔적을 담고 있다고 한다.

키클라데스 여인 조각상. 출처 : Plarishome via Wikimedia Commons CC BY 4.0


다만 기원전 2000년에서 1400년경 크레타 섬에서 번성한 미노스 문명에서는 기원전 1500년으로 추정되는 남성 소상이 있는데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양식의 조각술을 보여준다. 나무못으로 이어진 하마 어금니로 만든 이 조각은 녹색 변성암으로 된 뱀 모양 머리에 수정 원석과 황금 장식의 자취가 남아 있어 ‘크리셀레판틴 Chryselephantune’이라는 그리스 조각의 한 양식을 보여준다.

(왼쪽)아욱세레 코레의 채색 석고상 출처 : Neddyseagoon via Wikimedia Commons, CC BY 3.0


기원전 7세기 무렵에, 그리스에서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조각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고전기에 속하는 이 양식은 현재는 '다이달릭Daedalic'양식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로 흔히 불리고 있다. 다이달릭 양식은 그리스 조각에서 석재가 도입되기 시작한 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동방과의 교역이 증가하면서 채색된 경석을 조각의 매체로 즐겨 사용한 동방의 전통이 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672년 이집트가 앗시리아-현재의 시리아오 이라크 일부 지역-를 정복한 후에 에게 연안 국가들과의 교역이 용이해지면서 그리스인들이 처음으로 나일강가에 정착할 수 있었고 따라서 에게 조각가들이 이집트 인물상 전통 일부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육체적인 속성이 신으로부터 비롯되는 힘들로 여겼다. 코레 Kore(남성태 코우로이Kouroi)는 화력이 한창일 때 죽은 젊은이들을 기념하기 위한 장례 또는 봉헌 기능으로 만들었다. 칼로스 타나토스 Kalos Thanatos, 다시 말해 '아름다운 죽음'은 이들이 나이가 들어 노쇠해지는 것으로부터 지켜주고, 실물보다 큰 키로 만들어진 신체상을 통해 신성이 빛을 발하며 찬란하고도 영원히 보존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기원전 600년에서 575년 델피에서 출토된 클레오비스와 비톤은 아기베 가의 형제들을 추모하기 위한 나체 조각상으로 코우로스의 전통적인 형태다. 헤라 여신을 경배하는 축제 행사장으로 어머니가 타고 갈 우차를 끌어야 하는 황소들이 밭일이 늦어져 돌아오지 못하자, 이 두 형제가 대신 끌 것을 자청하고 나섰다가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6마일의 험한 길을 가야만 했다. 이들의 효심의 감동한 어머니가 헤라여신에게 자신의 아들들에게 ‘아름다운 죽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고 성소에서 휴식을 취하던 클레오비스와 비톤은 잠든 사이에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다.

클레오비스와 비톤. 출처 : Vicenç Valcárcel Pérez via Wikimedia Commons cc BY 4.0




이 시기부터 그리스 조각에서 자연주의를 향한, 즉 일상 세계에서 볼 수 있는 형태들을 모방하고자 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양다리에 고르게 무게를 싣는 것은 이전에 비해 인물상에 신체의 현존성을 좀 더 확실히 부여해 준다... 이러한 혁신들은 그리스인들에 의해 흔히 전설적인 다이달로스의 덕인 양 와전되기도 하였다. 그는 조각상들이 자기 힘으로 걸어 다니게끔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한 저술가에 따르면, "실상 그 시대에는 신상이나 인물상을 만드는 조각가들은 발을 나란히 붙이고 팔을 양옆에 늘어뜨리게만 했었다. 다이달로스가 처음으로 한 발을 앞으로 내민 모습을 조각했는데, 그런 연유로 사람들이 '다이달로스는 이 조각상을 걷게 만들었다'라고들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이집트를 비롯한 동방으로부터의 변화는 그리스 인물 조각상에 양식상의 변화뿐 아니라 대리석을 조각 재료로 선택하도록 자극했다.


터키 서부에 해당하는 소아시아의 에페수스 신전에 세워진 아르테미스 여신의 거대한 신상은 고대에는 엔도이오스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추정되었다. 다이달로스의 제자라고 전해지는 그는 고전주의 이미지를 더욱 분명하게 반영하는 인물이다. 이 아르테미스 신상은 헬레니즘 시기와 로마시대에 와서 대리석이나 기타 재료들로 번안된 수많은 모작을 낳게 한다. 기원전 500년 경이나 그 이전으로 추정되는 원작은 아마도 나무나 상아 혹은 줄마노와 청동으로 된 이 모작에서와 같이 여러 가지 혼합재료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로마시대에 제작된 이 작품에서 여신의 몸통에서 불거진 덩어리 모양의 기이한 기관들은 수세기 동안 세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신전 의례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받았는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아르테미스의 고대적 의미는 길든 상태와 야생 상태라는 상반되는 세력의 경계와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 위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는 -로마 시대 만들어진 모작으로 전해지지만-머리, 손, 그리고 발은 완숙된 고전주의의 형식적 언어를 보여주고 신체 몸통 부분은 그 이전 시기의 조아논의 느낌을 풍긴다.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모각. 출처 : Marie-Lan Nguyen via Wikimedia Commons, CC BY 2.5


유방이나 소 음낭을 연상시키는 기이한 형태가 시각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은 채로 만족스러운 해석을 내리기 어렵게 하지만 이 불확정적이며 잘 파악되지 않는 의미가 현대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기원전 480년경 아테네에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유형의 조각들은, 이 세기의 전환기에 신체 표현에서 엄청나게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 시기에 아테네 시의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진 등신대에 조금 못 미치는 크기의 대리석 코우로스 상 <크리티오스의 소년>은 다른 조각들과 더불어서 '그리스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을 구현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자연주의로서, 양식화된 아케이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초기 고전주의시대(기원전 480~450년)가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크리티오스의 소년>은 새로운 운동감과 외부의 자극에 바로 반응할 것 같은 모습으로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인간 형상 속에서 표현하고자 한 그리스인의 변화한 자기 인식에 대한 징표이기도 하다.


학자들은 기원전 480년을 전후로 하여 조각에서 새로운 인본주의가 출현하게 된 현상에 대해 기원전 490년 마라톤에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아테네가 패권을 쥐게 된 것과,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페르시아의 후속 공격을 살라미스 해전에서 격퇴한 후에 그리스인들이 자신감을 얻게 된 것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한다.

크리오티스의 소년. 출처 : Tetraktys via Wikimedia Commons, CC BY 3.0


<크리티오스의 소년>에는 소프로시네, 즉 분별이라는 그리스 특유의 덕목이 잘 담겨 있다. 기원전 6세기 후반의 극작가들과 철학자들이 신봉한 이 덕목은 도를 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자제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신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같은 소프로시네만이 인간이 어리석음을 깨쳐갈 길을 열어주며 나아가 인간 행복의 균형이 파괴될 때 생겨나는 혼돈과 무질서를 막아준다고 믿었다.


청동의 사용이 점점 증가함에 따라 자연주의도 발전해서, 조각가들은 신체 세부를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도록 고무되었고, 신체 표현에 부과된 목표들도 당연히 성취되었다.


아에기나 출신 오타나스 작품(피디아스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다)인 <리아체 전사상 A>는 왁스로 주형을 뜬 다음 후벼내는 기법으로 고대 조각가들이 높은 수준의 사실주의를 성취할 수 있게 했다. 주석으로 된 입술과 유두, 은박 치아, 그리고 상감된 눈등이 첨가돼 신체를 사실감 있게 재현했다.


그리스 전성기 고전주의(기원전 450~430년 전후)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제작한 두 조각가는 아르고스의 폴리클레이토스와 아테네의 피디아스다.


폴리클레이토스는 신체 비례에 관한 이론적 설명을 최초로 체계화했다. 고대 후기에 모작된 그의 작품 <도리포로스>에는 수학적 비례에 기초한 중심 원리 리드모스(구성)와 심메트리아(부분들 간의 균형 가능성)가 구현되어 있다. “완전성은 많은 수치를 통해 조금씩 성취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폴리클레이토스가 남긴 글이라고 전해진다.


독일의 계몽주의 사상가인 고트홀트 레싱 Gotthodl Lessing이 고대 그리스인에 대해 "아름다운 인간들을 본떠 제작한 아름다운 조각상들은 그것의 창조자들에게 다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그 시민들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조각상들 덕분이다."라고 주장했다.

리아체 전사상. 출처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전성기 고전주의 가장 위대한 조각가인 피디아스 Pheidias의 명성은 대규모의 아테네 건축 계획을 감독했던 업적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이 계획을 입안한 인물은 그의 친구인 동시에 기원전 447년에서 430년까지 아테네의 총사령관이자 통치자인 페리클레스였다. 페리클레스의 지휘하에서 그 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 파르테노스에게 헌납할 새로운 신전(파르테논)의 건립과 그 신상의 안치라는 주된 성과를 거두었다.

<바르바케이온의 아테나>. 피디아스 아테나 파르테노스의 모작. 출처 : Bubba73 via Wikimedia Commons CC BY 3.0


<바르바케이온의 아테나>. 크리셀레판틴 기법. 기원전 5세기 피디아스가 제작한 아테나 파르테노스를 기원후 2세기 로마시대에 본뜬 모작. 상아와 황금으로 피디아스가 만든 장엄하고도 거대한 아테나 파르테노스 예배상으로서, 지금은 고대 문헌, 주화, 그리고 후대의 모작들을 통해서만 전해진다. 받침대까지 포함해서 높이가 11.5미터에 달하는 이 조각상은 가운데 부분은 나무로 만들어지고 그 위에 금판으로 된 의상과 살갗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상아 박판으로 겉을 꾸몄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이 조각상의 제작에 사용된 금과 상아를 입히는 기법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신체 비례를 지닌 이 신상에 찬란함을 부여했다고 한다. 웅변가이며 철학자인 디오 크리소스톰은 “그것을 볼 때 즐거움이 느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본성이 비합리적인 피조물조차도 이 작품을 한 번만 본다면 이에 압도될 것이다.” 고 했다.


황금은 전설 속에서 신적인 권위와 영웅적 힘에 결부되는 물질이다. 황금 양털, 황금 비, 아킬레스의 황금 방패 등 몇 가지만 열거하더라도, 이들 모두에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능을 환기시키는 황금의 상징력이 내재되어 있음이 입증되고도 남는다.


페리클레스는 비상시에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이 조각상에 발라진 황금을 녹여 쓸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다짐했다. 권력의지의 상징과 시민적 정체성의 표상 모두를 뜻하는 아테나 여신의 의미 속에서, 황금이 입혀진 파르테노스 상은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인 것이 융합된 페리클레스 시대의 특징을 특별히 잘 보여주고 있다.


아테나 파르테노스 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서 제시되었듯이, 인체의 크기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신성한 권력과 신적인 의미의 신체를 상징하는 기능을 보유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체의 크기를 확대하는 수사법이 정치적 선전을 위한 전략으로서 동원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 사회에서 인간들의 자부심이 자라나고 신화에 빗대어진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본떠 조각을 만들기 시작한 것과 궤를 같이 하면서, 인물상은 상징성이 강한 조악한 형태로부터 인간의 나체를 정확하게 모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중세 : 부활한 신체


중세에 신체가 우월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비단 종교 미술의 맥락 속에서만은 아니었다.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신체는 기독교의 교리를 형상화하고 보급하는 데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강생, 성체로의 변화-빵과 포도주를 예수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는 것-그리고 부활이라는 기독교 교리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에 대한 종파 간의 치열한 논쟁의 중심에는 사람의 몸이든 조각된 형태이든 항상 신체가 있었다. 그러므로 신체는 인간과 신을 중재하는 기제가 되었다.


기독교 교회에서 신체가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었다는 것은 베네딕트회 대수녀원장인 빙엔의 성 힐데가드의 저술을 옮겨 적은 필사본 속의 세밀화에서도 보인다. 성스러운 계보를 그린 이 지도는 남성의 신체로서 묘사된 인간을 소우주의 중심에 위치시킨 후, 더 광범위한 대우주(위대한 우주)의 일부로 둘러싸고 있다.

대우주 속의 소우주로서의 인간. 빙엔의 힐데가르드 표지 세밀화. 출처 :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고대가 역동적인 신체의 완전함을 신성의 주된 표현으로서 간주했다면, 중세의 종말론-세상이 끝날 무렵 최후의 심판을 받을 거라는 믿음-은 고통받고 번민하는 신체에서 궁극적으로 구원받기를 갈구하였다.


중세에는 조각이 신체가 지니는 독특한 의의를 전달했는데 녹여진 다음 다시 주조된 조각상은 사후 신체의 연속성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부활에 대한 통상적인 비유로 통했다.


그런가 하면 중세 전례학자인 뒤랑 드 멍드 Durand de Mende 의 설명에 따르면 교회 건물을 세우기 위한 기초설계 및 내부구조와 전례행사 계획에서 신체가 기본 잣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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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세계인형박물관(www.worlddoll.net) 학예사 / <인형의 시간들(바다 출판사 발행)> 저자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바다출판사 발행)>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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