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시작한 지 어느새 3년째가 됐다.
2015년은 박물관을 준비하고 꾸미며 기반을 닦았다. 지난해에는 어엿한 박물관의 내용을 갖추고자 고민했다. 박물관 등록을 준비하고 관람객들을 맞으면서 어떻게 박물관 전시물들을 설명할 것인가,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 어떤 전시회를 열 것인가 등을 고민하고 시도했다.
3년째가 되어 올해는 고용노동부와 헤이리가 함께 마련한 취,창업 프로그램 <하하 프로젝트>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는 어르신문화프로그램 <어르신은 인형작가!>을 함께 진행하게 됐다.
<하하 프로젝트>가 박물관의 이론과 실전에 치중한 교육이라면, <어르신은 인형작가!>는 인형을 어르신들이 직접 만드는 과정을 통해 생활 속 예술을 누리며 즐기는 과정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었다.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고민도 컸다.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진행 동안 별 일은 없을지 이 프로그램 내용이 마음에 들지 등등. 처음 진행하는 호흡이 긴 교육이라 쉽사리 예측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걱정인형이 말해주잖는가. 걱정하지 말라고. 수업이 다가올 때마다 그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자료나 재료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하하 프로젝트>는 지난 5월부터 두 달여의 시간을 거쳐 지난 7월 20일에 끝났다. 취, 창업반 모두 2명이 1조가 되고 취업반은 7주 동안 헤이리 7개 공간을 2차례씩 다니면서 박물관과 미술관의 실무를 배우고 창업반은 7주 동안 한 공간에서 창업에 필요한 실무와 이론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헤이리의 특성을 살려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취업과 창업을 하도록 돕는 이 프로그램에 우리 박물관도 취업반으로 참여하게 됐다.
하하 프로젝트 수료식. 창업반은 그새 장인이 됐다. 취업반은 그간 작성한 과제물들을 제출했다.
이곳을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인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취업을 준비하는 참가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상식과 실무를 알려주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살짝 긴장도 됐다. 한 팀에 3시간씩 2번, 6시간 동안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까가 내게 안겨진 과제였다. 첫 3시간은 우리 박물관 전시품인 인형들 속에 숨은 세계문화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그다음 3시간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박물관의 실무 중 특히 다른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잘 다루지 않을 것 같은 전시해설 실무와 전시기획안 작성, 그리고 보도자료 작성에 대해 강의했다.
5월 취업반과 창업반 첫 만남에서는 박물관과 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박물관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내가 박물관을 준비하고 박물관에서 일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편하게 얘기했다. 누구 유명한 사람들처럼 내세울 수 있는 성공스토리는 아니지만 비슷한 길을 모색 중이거나 가게 될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다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는 이도 있었고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해오던 이도 있었고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참여한 이도 있었다. 연령대도 다양했다.
창업반 14명과는 공간 소개차 한 번 만났고 취업반 참가자들과는 7개 조, 14명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반짝이며 수업에 임하는 이도 있었고 중간 과정에서 지치거나 오히려 방황이 새로 시작된 듯한 이도 있었고 수업 전반을 즐기는 여유 있는 이도 있었다.
강사였지만 배울 점도 많았다. 한 분야를 열심히 오래 한 참가자들이 많았다. 일본 문화에 정통한 이, 인도 문화에 정통한 이, 미술사에 해박한 이, 전시해설을 오래 한 이. 수업 중간중간 대화를 나누며 내가 궁금한 점을 묻기도 했다.
평소 박물관의 인간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더랬다. 한 번 만난 사람을 두 번 만나기는 드물고 오랜 시간 같이 지내는 관계를 맺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손에 들린 과자는 종종 내 입으로 직행했다. 마지막 수업시간이었던 이날, 나는 더 많은 간식을 먹었다.
하하 프로젝트 참가자들과의 만남은 좀 달랐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6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진로를 의논하고 박물관 전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으로 같은 길을 걸을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긴 했지만 또 다른 길을 가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먼저 걸어온 길 속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함께 나누는 시간은 그만큼 알찼다.
수업 과제로 내 준 전시기획안을 멋들어지게 해온 이도 있었고 박물관 체험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며 좋을까라는 부분에서 내 귀가 번쩍 뜨일 좋은 아이디어를 내 준 이도 있었다. 수업 중 어쩌다 조금은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경우도 있는데 내 말이 도움이 됐다며 일부러 박물관을 다시 찾아와 줘서 황공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뜨거운 열정이 눈에 보이던 한 참가자는 프로젝트 기간 중에 취업이 되기도 했다.
<어르신은 인형작가!>는 더 오랜 시간인 5개월 동안 진행됐다. 4월에 처음 만나서 9월에 프로그램은 끝났다.
이 프로그램은 내겐 더없이 특별한 경험이었다. 평균 연령이 70대에 가까운 데도 그렇게 정열적일 수 없는 어르신들. 이제 50대가 눈앞에 놓인 내게 어르신들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내가 노년을 어떻게 맞이하고 보낼지에 대한 완벽한 답안을 던져주기도 했다. 어르신들에게는 과분한 사랑도 받았다. 수업 시간마다 어르신들에게 '선생님'소리를 들으며 황공해했다. 어르신들과는 꾸준히 <바부슈카>라는 핸드메이드 인형 브랜드로 함께 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운 점이 많았다.
배움은 때로는 만나는 이의 지식으로도 얻어지지만 또 때로는 만나는 이의 태도와 삶에서도 얻어진다.
두 종류의 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나니 내 마음 주머니는 왠지 풍성해진 것 같고 나 자신도 훌쩍 커졌음을 느낀다. 나는 가르쳤던 것일까 배웠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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