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문산 빛나요 도서관장입니다."
11월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박물관에서 하는 인형 만들기 체험 수업이 어떤 내용인지, 도서관까지 와서도 체험교육 수업이 가능한 지를 알아보셨다. 우리 박물관은 보통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할 경우 손인형 만들기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현장에 가서 수업을 한다.
문화누리 카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시작된 현장수업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파주 안에 있는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곳이라면 인원이나 프로그램 따지지 않고 일정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정도에서 현장수업을 하는 편이다.
관장님은 도서관에 이웃한 유치원 친구들이 도서관에서 손인형 체험교육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박물관에서야 숱하게 수업을 했고 현장수업도 초등학교며 요양원 등에 많이 갔지만 도서관은 처음이었다.
신기하게도 모든 처음은 설레고 떨린다. 도서관의 수업도 그랬다.
빛나요 도서관은 도서관 중에서도 '작은 도서관'이었다.
작은 도서관이라니...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직접 가보는 건 처음이다.
나는 '작은'이라는 수식어를 좋아한다. 문화란 것이 알고 보면 이 작은 모든 것들이 존중받을 때 발전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도 하다. 옷이며 가방도 조각난 것들이 모여 하나가 되는 '패치 워크'기법을 좋아하고 여행이나 관광을 할 때도 규모로 사람들을 압도하기보다는 아기자기하면서 독특한 것들로 눈길을 끄는 것들을 선호한다.
빛나요 작은 도서관은 기대했던 대로 작지만 알찼다.
문산 아파트 단지 내 관리동 안에 있었다. 좀 일찍 도착한 덕에 도서관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40평쯤 될까... 도서관 뒤쪽으로는 오래된 책꽂이가 보였고 앞쪽으로는 밝고 환한 색으로 된 책꽂이들이 놓여 있었다.
으리으리하고 대단하진 않았지만 세심하게 신경을 쓴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벽면 한쪽으로는 어린 친구들이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책을 볼 수 있게 빌트인 느낌의 공간을 만들었고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위해서는 독서실에서 볼 법한 개인 공간이 충분히 확보된 책상이 있었다. 난방을 위해 설치한 라디에이터는 곱게 나무 커버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꽤 너른 흰색의 평상 같은, 현대적 재질의 가구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그 위에서 앉아서 놀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또 금세 뒹굴거리듯 반쯤 눕기도 했다. 연세 지긋한 이웃분이 책을 한 권씩 꺼냈다 넣고는 하셨다. 책을 정리하시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빛나요 도서관이 있는 동네에는 사할린에서 이주해 온 동포들이 많이 산다고 했다. 파주는 마을마다 현대사의 이야깃거리 하나씩을 쟁여놓은 것만 같다. 도서관에 와서 사할린 동포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책을 정리하시던 분도 사할린 동포였다. 마침 도서관장님이 인형 박물관을 소개하며 마트료시카 이야기를 꺼내니 잠시 향수에 젖은 듯한 아련한 눈빛으로 마트료시카를 반갑게 기억했다.
도서관이라고 해서 책만 있는 건 아니었다. 칸막이 뒤편으로는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임을 갖거나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책상이 넉넉하게 이어져 있었다. 박물관 인형 만들기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연세 지긋한 선생님 한 분과 씩씩하고 밝아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초등학생이 체스를 두고 있었다. 체스 수업시간이라고 했다. 1대 1의 여유로운 수업.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할 수 있는 테이블 뒤쪽으로는 전자키보드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체스를 두고 키보드를 연주해도 된다니... 빛나요 작은 도서관은 사람들이 와서 책만 읽고 가는 '조용한'도서관보다 좀은 북적거리는 사랑방 도서관을 원하는 것 같았다.
손인형 수업도 이웃 유치원 아이들을 위해 마련됐다. 관장님은 "어릴 때부터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흥미로움을 느껴서 틈나면 찾아오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다.
수업이 시작됐다. 물감을 써서 인형을 만들기에는 많은 조건이 여의치 않아 패브릭 마카와 패브릭 파스텔로 수업을 진행했다. 손이 들어가는, 장갑처럼 생긴 무지의 손인형을 앞에 둔 아이들은 잠시 뭘 그릴까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들만의 세계를 펼쳐 나갔다.
초간단 디자인으로 일찍부터 인형을 다 만든 친구도 있었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고심하며 만든 친구들도 있었다. 인형 만들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인형을 벌써 자기의 친구로 만들며 역할놀이에 빠져들었다. "안녕? 난 ** 친구야!" "응, 난 **야!" 그러곤 이어지는 "까르르~" 웃음소리. 어느새 작은 도서관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과의 인형 수업이 재밌는 건 그 무한대의 상상력 때문이다. 인형이 아주 오래전부터 어린이들의 장난감이 되어온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들은 밝고 표현은 자유로웠다. 게임의 인물을 그린 것도 있었고 내가 그린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성을 따라 그린 아이도 있었다. 선과 점만으로 그림을 그리곤 끝인 아이도 있었다. 배경은 없는 게 더 좋다는 당당한 소신과 함께.
빛나요 작은 도서관에서의 인형 수업은 11월 30일, 12월 7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12월 7일 두 번째 수업을 진행하면서 놀란 건 그저 두 번째의 수업일뿐인데 아이들의 흥미와 솜씨가 크게 늘어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인형을 세 번, 네 번 그렇게 꾸준히 만들면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상상조차 안됐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렇게 인형 체험 교육을 시키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겨났다.
아이들이 도서관을 흥미롭고 편하게 여기길 바라는 관장님의 바람은 이미 이루어진 듯했다. 두 번 봤다고 아이들은 어느새 도서관을 자기들 공간으로 만들었고 관장님과도 부쩍 친해져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마을마다 도서관과 공동의 놀이 및 공부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학원을 여기저기 오갈게 아니라, 적어도 초등학교 아이들만이라도 그 공동의 공간에서 동네 형아도 만나고 동생도 만나며 어릴 적에는 그저 자유롭고 편안하게 정서적 교류와 흥미의 탐색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초등학교 때 학원에 다니지 않았던 내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혼자 놀아야 했던 기억도 났다.
그때도 이런 작은 도서관이 있었더라면 좀 데리고 다녔을 텐데... 늦게라도 요즘 작은 도서관이 활성화되는 걸 보면 반갑다. 마을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사랑방처럼 편하게 다니며 소중한 추억 가득 쌓기를 기대한다.
작은 도서관을 '작은 공간'으로 가두어 두지 않으려는 관장님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