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비아 헤레로 부족 여성의 오호로코바
발끝까지 내려오는 길이에 옆으로 볼륨 있게 펼쳐지는 화려한 드레스, 그리고 드레스와 소위 깔 맞춤한 천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머리 모양의 머리 장식. 옛 유럽 드레스 차림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옷차림은 놀랍게도 한창 더울 때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남서부 아프리카의 나라, 나미비아(Namibia) 헤레로(Herero) 족 여성의 옷차림 오호로코바(ohorokova)다.
밝고 눈에 띄는 색상에 과감하고 화려해 보이는 이 오호로코바는 나미비아에서 하루가 다르게 더 화려하고 멋있게 발전해 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헤레로 부족의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목축을 생업으로 삼는 헤레로 부족은 17~18세기에 지금의 나미비아 땅으로 이주해왔다. 1884년 독일이 나미비아에 대한 식민통치를 시작했다. 독일의 나미비아 식민통치는 1915년에 끝났지만 독일은 나미비아에서 20세기 최초로 끔찍한 대량학살(genocide)을 자행한다.
식민 통치를 시작한 독일의 횡포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자 헤레로 부족이 나마(Nama) 부족과 함께 대규모 봉기에 나섰다. 헤레로 부족장 사무엘 마하레로(Samuel Maharero)의 지휘로 1904년에 시작된 봉기는 1907년까지 계속되었다.
독일 해군은 전투가 계속되자 헤레로 부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전투 중에 헤레로 부족을 사막으로 유인한 뒤 물이 공급되는 것을 차단한 것이다. 이 잔인한 방법에 헤레로 부족은 80,000명에 이르던 인구가 불과 4년 만에 15,000명으로 줄었다. 헤레로 부족의 80퍼센트가 독일 해군에 의해 기아와 탈수로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헤레로 족 여성의 옷차림 오호로코바는 독일군의 식민통치 시작 전 먼저 와있던 선교사 부인들의 옷차림이다. 이들이 오기 전 헤레로 부족 여성들은 반라 차림으로 지냈다. 하지만 독일인들에 의해 빅토리아 시대였던 당시의 옷차림을 강요당했다.
헤레로 여성들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도 이 옷을 버리는 대신 나미비아 스타일로 변형시켜 자신들의 옷으로 만들어가면서 입어 오고 있다. 긴 치마에 페티코트까지 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천을 덧대어 만들거나 시작은 빅토리아 시대 독일 여성의 옷차림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헤레로 스타일이 되었다.
이 오호로코바 차림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오치카이바(otjikaiva)라고 하는 머리 장식이다. 크고 위로 솟아 있는 모양은 헤레로 부족이 소중히 여기는 소의 뿔 모양이다. 속을 종이 등으로 채워 모양을 잡은 뒤 천을 씌워 만든다.
헤레로 부족이 이렇게 예전 옷차림을 고집하는 데는 ‘역사의 기억’과 더불어 ‘독일 만행의 고발’이란 측면도 있다. ‘이런 옷차림의 당신들이 저지른 짓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헤레로 남성들은 이 끔찍한 전쟁 당시 독일 군복 옷차림을 자주 한다. 정확히는 20세기 초 나미비아를 침략했던 독일 군인의 옷차림이다. 베레를 쓰고 어깨 장식을 하고 다리에는 각반을 대는 등이다.
이는 과거 그 끔찍한 역사의 현장에서 부족을 위해 싸웠던 조상들이 썼던 방식이다. 독일군에 맞서 싸웠던 헤레로 군인들은 자신들이 죽인 독일군의 옷을 벗겨 입었다고 한다. 그것은 하나의 절박한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승리의 기운을 빼앗아 올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전투가 없는 지금도 헤레로 남성들이 20세기 초의 독일 군복을 입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독일의 진정한 사죄를 촉구하고 자신들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1904년 헤레로 부족을 위해 봉기에 나섰던 부족장 사무엘 마하레로는 1923년 3월 14일 보츠와나에서 세상을 하직하고 그해 8월에야 나미비아의 중부 오카한자(Okahandja)에 안치된다.
나미비아에서는 매년 8월 23일에 가장 가까운 일요일부터 3일간을 헤레로 데이(Herero Day)라고 해서 부족장 추모식을 갖는다.
한편 독일은 헤레로 부족 대량학살 112 주년이었던 2016년 7월 13일에서야 헤레로 인들과 나미비아 정부를 향해 자신들의 행위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인형에 대해 알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참혹한 비극의 역사를 마주하게 되었다. 여성 노예들이 네덜란드 농장주의 성적 착취에 노출되지 않으려는 자구책으로 입었던 코토 미시 때도 그랬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 새삼 몸서리쳐진다.
헤레로 부족은 옷으로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알리는 동시에 자신의 것들로 훌륭하게 만들어 낼 줄도 안다. 현대 헤레로 여성들의 옷은 더이상 독일이 남긴 유물과 아픈 기억의 잔재로만 남아있지는 않다. 부족 전체의 생존이 위협받던 그 기억 위에 헤레로의 자부심도 함께 새겨나가며 오늘도 한단계씩 변화하고 있다.
동영상으로도 관련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 https://youtu.be/iPpusbVpV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