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 지방의 볼렌훗
세상에 별별 특이한 모자가 많지만 독일 흑림 지방의 볼렌훗(bollenhut)도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다.
빨간 색의 커다란 폼폼 여러 개가 모자 위에 있어서 눈에 쏙 들어온다.
'세상에 이런 모자가 다 있구나' 싶어서 아주 특별한 날에만 써야할 것 같은 이 모자는, 독일 남부 흑림 지방의 모자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빨간 폼폼이 무려 14개나 장식되어 있다.
눈에 확 띄는 이 모자는, 꽤 오랜 기간의 전통임에도 독일에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
이 빨간 모자를 쓰는 곳이 독일에서도 깊고 깊은 숲, 흑림의 작은 마을들이기 때문이다.
폼폼은 딱딱한 밀짚 모자 위에 만들어졌다. 밀짚 모자를 하얗게 칠해서 그 위에 폼폼을 얹어 고정시킨다. 보통 14개의 폼폼이 올려지지만 그중 세 개는 아래에 깔려서 보이지 않고 겉으로는 11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자 밑으로는 검정 색의 망사 그물 같은 것이 쓰는 사람의 눈 위에 이르는 길이로 늘어뜨려져 있다. 그리고 까만 리본이 달려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턱밑에서 묶을 수 있다.
모자 위에 달리는 폼폼의 색깔은 빨간색과 까만색, 두가지다.
빨간 색의 화려한 폼폼은 미혼 여성들이, 까만 색의 검소한 폼폼은 기혼 여성들이 쓴다.
유럽의 다른 많은 모자와 비슷하게 미혼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드러낸 채 이 볼렌훗을 쓰지만, 결혼한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감춘 뒤 볼렌훗을 쓴다.
소녀들은 자신의 견진성사( the Sacrament of Confirmation, 堅振聖事 : 천주교에서 신자가 세례 성사를 받은 뒤 신앙심을 다지며 치르는 성사, 이 지역은 기독교 기반이지만 견진성사를 하는 듯 하다.)에서 이 모자를 처음 쓴다.
이처럼이나 독특한 모자는 어떻게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
이곳이 깊은 숲속이고 사람들간 교류가 활발해 지지 않았던 탓인지 모자의 시작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또 이 모자는 독일 흑림 지방에서도 아주 작은 지방 구타흐(Gutach), 키른바흐(Kirnbach), 그리고 라이첸바흐(Reichenbach)세 곳에서만 쓰여져서 더욱 그렇다. 1750년께부터 볼렌훗이 등장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볼렌훗에 대해서는 폼폼이 14개가 있어 구난성인(救難聖人: 독일에서는 천주교의 수호성인 14명을 구난성인이라 하여 특히 흑사병이 창궐하던 14~18세기에 구난성인에 대한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한다.)을 상징한다는 설이 있으나 이 지역이 천주교가 아닌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기에 가능성이 낮다는 반박도 있다.
원래는 이웃 천주교 지역의 머리 장식이 아주 화려했다고 한다. 머리 위로 크게 솟아 오른데다 각종 진주와 보석 장식을 한 형태고 그때까지만 해도 볼렌훗은 없었고 소박한 형태로 검은 색의 망사를 머리에 둘렀다. 그런데 18세기 후반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한 방편으로 밀집 모자가 만들어졌고 여성용 밀짚 모자가 유행하게 되면서 기독교 여성들도 멋을 내게 되었다. 처음엔 밀집 모자에 원을 그렸다가 19세기에 이르러 작은 폼폼이 달리더니 점점 커졌다는 것이다. 폼폼이 커지고 커져서 14개의 폼폼이 모두 달린 볼렌훗의 경우 무게가 2킬로그램에 이른다.
볼렌훗이 종교적 이유에서 시작했든 아니든 종교와 관련이 깊기는 하다. 소녀들이 처음 볼렌훗을 쓰는 때가 견진성사 때이고 볼렌훗은 위에서 봤을 때 폼폼이 십자가 모양을 이룬다. 그리고 교회갈 때,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 즐겨 쓰였다.
볼렌훗이 널리 알려지게 된 건 2차 세계 대전이루 처음으로 선보인 컬러 영화 <흑림소녀(The Black Forest Girl)>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때 볼렌훗이 독일 전역에 알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흑림의 조그만 세 마을에서 쓴 모자가 어느덧 흑림의 상징처럼 되었다.
흑림은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 때문에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숲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가 잘 아는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배경이기도 하고 뻐꾸기 시계, 그리고 초콜릿과 생크림 위에 빨간 체리들이 콕 박혀있는 흑림 케이크로 유명하다.
볼렌훗에 관한 동영상 https://youtu.be/lccCbpVX6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