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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 Apr 04. 2020

한 알 한 알 꿰어 엮은 시각적 언어

남아프리카 공화국 은데벨레 구슬 인형

남아프리카 은데벨레족의 구슬인형은 첫인상이 강렬하다. 얼굴과 피부는 까맣게 표현되고 눈으로 구슬이 달려있을 뿐 코도 입도 생략되어 있다. 이런 단순한 얼굴 표현과 대비되게 인형의 몸을 감싸고 있는 건 형형색색의 구슬. 색은 많지만 난잡하진 않고 나름의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사물을 단순화시킨 추상의 느낌도 강해서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대적이다. 

은데벨레 족의 구슬 인형

아프리카에서는 구슬 공예가 발달했고 남아프리카의 줄루족과 은데벨레족의 구슬 인형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은데벨레족은 줄루족에서 갈라져 나온 부족이니 어쩌면 이 두 부족의 구슬 공예가 발달한 건 당연하다. 


아프리카는 오랜 기간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던 무문자 사회다. 문자가 없는 곳에서 의사 전달이나 역사의 기록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아프리카의 문화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시각화와 청각화다. 말하자면 문자로 기록하는 대신 그림이나 음악이 그 역할을 대신했던 것이다.


아프리카의 구슬 공예에도 그런 문화는 그대로 남아있다. 은데벨레 부족이 몸을 치장하는 구슬공예가 발달했고 은데벨레 부족을 닮게 만든 그들의 인형은 그래서 많은 구슬들로 장식되어있다.


은데벨레 족은 특히 여성의 생애 중요한 순간마다 옷차림과 구슬 장식을 다르게 한다.  은데벨레 부족의 구슬 인형도 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전형적인 은데벨레의 구슬 인형은 성년식 인형으로 머리에는 구슬 장식을 하고 몸 전체를 감싸는 긴 망토 같은 은구바Nguba를 둘렀다. 허리 앞쪽으로는 앞치마 모양의 이조골로Ijogolo도 두르고 있다. 망토와 앞치마는 결혼한 은데벨레 여성의 상징이다. 은데벨레 여성들은 결혼한 후 생겨나는 많은 상황들, 아이를 낳았다거나 성년식을 할 때가 됐다는 등의 사연을 이조골로에 구슬 무늬로 새겨 넣어 알린다.

구슬 공예가 발달한 은데벨레 부족


은데벨레족의 ‘링가 코바Linga Koba, 혹은 Linga Kobe’ 인형은 아들을 둔 엄마의 인형이다. ‘긴 눈물’이란 뜻의 링가 코바는 원래 은데벨레 여성들의 구슬 장식을 일컫는다. 머리에서 발까지 늘어뜨린 흰 구슬 장식은 아들의 성년식 때 쓴다. ‘긴 눈물’은 아들을 성년식에 보낼 때 흘리는 걱정과 안타까움의 눈물, ‘소년인 아들’을 떠나보낸다는 아쉬움이자 동시에 건장한 한 남자로 돌아온 아들을 맞을 때 흘리는 기쁨의 눈물 모두를 뜻한다. 흰 구슬 장식이 늘어진 인형이 링가 코바이지만 은데벨레족의 구슬 인형을 통칭해 이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미혼 여성들의 구슬 인형에는 이조골로나 은구바가 없다. 약혼자가 있는 여성일 경우 허리에 검은 고리를 두른다.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보내는 인형도 따로 있다. 긴 몸통에 구슬 장식이 된 인형이다. 남성이 약혼한 여성에게 청혼할 때 이 인형을 상대 여성의 집 앞에 두고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은데벨레족의 신부 인형은 화려하다. 머리에는 알록달록 색을 넣어 꾸민 ‘인요가inoga’라는 특별한 구슬 장식을 한다. 얼굴 앞쪽으로는 ‘시야야siyaya’라는 이름의 하얀 구슬 베일을 두른다. 은구바도 요란하게 장식한다. 


은데벨레 여성에게도 다산 인형이 있다. 아래쪽으로 화려하게 꾸민 3단의 구슬 링을 따로 감고 머리도 구슬로 장식한 인형이다. 다산 인형은 특히 신부 쪽 어른 중 아이를 잘 낳은 할머니가 비밀리에 만들어 신부에게 준다. 신부는 이 다산인형을 신혼집에 가지고 가지만 아이를 세 명 낳고 나면 이 인형을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없애 버린다. 세 명을 낳고 난 뒤의 다산 인형은 나쁜 기운을 가져온다는 믿음에서다. 

은데벨레 부족의 다산인형


은데벨레 부족의 구슬 인형 중 머리카락이 작고 단순한 몇 가닥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있다. ‘상고마sangoma’ 인형이다. 은데벨레족의 사제이자 의사, 치유자 역할을 하는 상고마는 조상의 영혼과 교류하며 부족의 중요한 일 을 결정한다. 사회적으로 큰 신망을 얻는 존재다. 

상고마 인형

은데벨레 부족이 옷에 구슬 장식만 하는 건 아니다. 은데벨레 부족은 특히 '우무지(umuzi)'라고 하는 전통 집마다 독특한 벽화가 있는데 이로 인해 집과 마을, 그 자체가 '작품'이다. 은데벨레 부족 집집의 벽화를 그리는 건 평범한 주부들. 여기서는 집의 벽에 그린 그림이 마을의 전통을 지키는 것일 뿐 아니라 액운으로부터 가족과 마을을 지켜준다고도 믿었다.


은데벨레 부족의 벽화는 대체로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그려진다. 직선과 삼각형, 네모, 화살표, 지그재그, 그리고 다양한 곡선과 동그라미 등의 형태가 즐겨 사용된다.


무문자의 사회였던 이곳에서 이 그림들은 일종의 언어이기도 하다. 벽화를 그리면서 자신의 기분이나 집의 대소사 등을 그려넣기도 한다. 집집마다 개성 가득한 벽화가 그려진 마을이라니! 유럽에서는 '예술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마을'이라고 부른다니 과연 그럴 만 하다. 


은데벨레 구슬인형 유튜브 영상 -> https://youtu.be/PETzpIqkzqk

은데벨레 부족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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