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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May 16. 2020

친하니까 말한걸까?
말해서 친해진걸까?

자기노출과 관계형성 'mutually transformative'


친하니까 말한걸까? 말해서 친해진걸까?


첫 만남에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위험요소에 먼저 반응하도록 설계된 우리 뇌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안심하고 경계를 내려놓는다. 그래서 신뢰는 호감의 전제조건이 된다. 심리학에서는 상대방의 경계심을 허물고 신뢰를 쌓기위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자기 노출 self-disclosure’이라고 한다. ‘자기노출’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관계가 깊어지는 것’ 사이의 관계를 ‘서로 변형시키는mutually transformative’ 과정으로 설명한다. 자신을 드러내면서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가 깊어지고, 서로 가까워지면서 서로 점점 더 많은 사실을 공유하게 된다. 



표는 담에 이쁘게 수정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관계 변화의 단계 모형에 따르면 관계가 발전하고 쇠퇴하는 상호보완적인 과정을 거치며 친밀감이 만들어진다. 관계의 초기에는 가벼운 개인사와 같은 객관적인 사실, 그다음으로 의견이나 가치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정적이거나 비밀스러운 사실을 털어놓는 것으로 노출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이 과정이 아무리 급속도로 이루어지더라도 이전 단계를 뛰어넘지는 않는 것이 보통이며 (Knapp &Vangelisti, 1991), 이전의 단계를 갑자기 뛰어넘을 때 상대방은 오히려 어색함을 느끼고 관계는 다시 멀어진다. 



전통적인 사회적 침투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성격은 마치 양파껍질과 같다. 바깥쪽은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접근할 수 있는 ‘공적 자아(public self)’이고 중심부로 갈수록 친밀한 관계에서만 노출이 허용되는 ‘사적 자아(private self)’가 드러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노출이 점점 중심부로 이동하고 관계의 폭과 깊이가 확장된다. 서로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단순히 남들이 모르는 사실을 몇 가지 더 알고 있다는 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자기 노출이론 Self-Disclosure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두가지 측면을 갖는데 한 쪽은 ‘있는 그대로의 나’ 이고 다른 한 쪽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가식적인 나’이다. 솔직한 자기 노출은 자신의 말과 행동, 생각을 상대방이 있는 그대로 수용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는 말과 행동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노출이 지나쳐서 ‘숨겨진 창’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경우에는 자칫 가벼운 사람으로 낙인찍히거나 상대방에게도 비슷한 수준의 자기 노출을 강요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게다가 수다스러운 자기 PR이나 푼수같이 아무말이나 하면서 너스레를 떠는 것이 솔직함을 의미하는것도 아니다. 일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어 자신에게 관심을 묶어두려는 ‘대화 나르시시즘(Knapp & Vangelisti, paly 1990)’은 오히려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자기노출’은 듣는 사람의 경험에 따라 재해석 된다. 서로가 인식하는 관계의 깊이가 다르거나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때, 혹은 듣는 사람의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왜곡되기도 한다. 가령, 친밀한 관계를 전제로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말하는 사람이 평소에도 수다스러웠다면 듣는 사람은 이 비밀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될지도 모른다. 말할 때의 분명한 의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은 이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전혀 다른 뜻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눈빛만으로 통할 것같은 가까운 사이에서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치 않은 모습으로 서로를 대하는 서투른 실수를 반복한다. 모든 의사소통에는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내밀한 감정을 노출했을 때 수용되지 못한 감정은 단순히 사실이 잘못 전달되는 경우 보다 관계에 훨씬 더 큰 파장을 몰고온다.






“자기야 나 요즘 힘들어.” 

“자기 많이 힘들구나. 무슨 일이야? 말해봐. 괜찮아.” 


vs


“여보, 나 요즘 사는 게 힘들다.” 

“그럼 돈 많은 사람이랑 결혼하지 그랬어!” 






만난지 보름쯤 지난 캠퍼스 커플과 수십년을 동고동락한 부부의 대화는 다르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기노출’은 그대로 객관적인 정보로 인식되지만, 이미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는 속뜻을 짐작하게 된다. 평소 아내에게 잘 해주지 못해 미안했던 남편은 아내의 사소한 하소연에 발끈하는 것으로 서툴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불만을 늘어놓으려는 아내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아내의 부정적인 말은 남편 입장에서는 단순한 감정표현으로 들리지 않는다. 사적인 정보이전에 그들 관계의 문제로 인식된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서로가 깊이 연결되어 있을 수록 상대방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생각처럼 쉽지않다.  



“누가 당신 때문이래? 그냥 힘들다고 말도 못 해?” 



이미 오해로 마음이 닫혀버린 상대방에게 단지 위로받고 싶었다고 열을 올려봤자 이미 때는 늦었다. 무심결에 감정을 꺼내놓기 전에 지금 내 앞에 있는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배려가 있는 ‘자기 노출’과 수용만이 의미있는 관계를 이어준다.. 아울러 상대방의 자기 노출을 수용하는 입장이라면,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의 말을 속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꼭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아내는 지금도 오래전 그날처럼 그저 당신의 진심 어린 위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지금도 오래전 그날처럼
그저 당신의 진심 어린 위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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