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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Jul 06. 2020

Self monitoring, 눈치

조하리의 창 : 신중형 의사소통



Self-monitoring, 눈치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위태로운 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무리에서 떨어진 망아지와 맞은 편에서 이를 응시하는 암사자의 투 샷이다. 하물며 성인이 되어서도 겨우 조랑말만 한 인간에게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 위협적인 사실은 조상 대대로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이 가진 ‘소속의 욕구’이다. 한 인간이 무리에 잘 스며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능력, 그것이 바로 ‘눈치’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눈치를 ‘자기 모니터링 self-monitoring’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관찰하면서 행동을 조절해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자기 모니터링 경향이 높은 사람 high self-monitoring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민감하여 융통성 있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려고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직장에서 동료나 상사에게 매번 직언을 날릴 수 없는 상황에서 적당한 ‘눈치’는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전략이 되기도 하고, 노련한 세일즈맨은 속을 뒤집어놓는 진상 고객을 상대할 때조차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용케 알아채고 실적을 낸다. 



그뿐 아니다. 우리는 가끔 주변 사람의 반응을 살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속마음을 숨기고 재빠르게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만일 ‘나 예뻐?”라는 연인의 말을 듣고 이것이 사실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상황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래서 ‘눈치’는 동물적인 본능에 따라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인간관계에서 이러한 동물적인 반응은 수시로 일어난다. 우리는 서로의 말과 행동을 자세히 살펴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얻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따뜻하게 배려하기도 한다. 아무렴, 관계가 깊어지는 데에는 ‘눈치’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때로는 몸짓 언어가 말보다 훨씬 강력해서 상대방의 표정이나 말투를 보고 즉시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기도 한다. 침묵하기, 째려보기,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는 것 등 매 순간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하여 상대방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이고,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신중한 태도가 도를 넘어서는 것을 가리켜 ‘눈치를 본다’라고 말한다. 적당한 눈치 self monitoring는 관계를 원활하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느라 행동이 제약을 받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곧 불편해지고 만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불안해하는 것은 소위 내향적인 사람들에게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며 걱정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각자가 나름의 방식대로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소외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수록 걱정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불편한 감정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사람들의 행동 유형에 따라 지나치게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또 어떤 때는 입을 꾹 다물고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그 표현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나 호탕하게 잘 웃는 사람은 이런 불안을 전혀 경험하지 않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인 행동 양식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항상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신중함’의 정도가 결정된다. 겉으로는 거리낌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남은 나를 평가한다’고 생각하는 한 ‘신중함’은 늘 도를 넘게 마련이다. 깨방정으로 분위기를 띄우건 인상파로 허세를 부리던 속으로는 매한가지다.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거나 최소한 무시는 당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이런 마음으로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서로 가까워질수록 불편한 감정이 더 커질 뿐이다. 


J는 항상 크게 말하고 많이 웃는 편이라 저녁 무렵엔 예외 없이 방전이다. 그녀의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에 주변은 늘 활기가 넘친다. 지인들은 항상 할 말 다 하고 사는 듯한 J를 부러워했지만, 그녀에게 늘 이렇게 말하는 선배가 있었다.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아도 돼." 처음에는 그저 사람 좋아 보인다는 칭찬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렇게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따듯한 위로다. 항상 분위기 메이커이던 그녀였지만 매 순간 상대방과 거리를 조율하느라 속으로는 항상 신중함이 도를 지나쳤다. 그러다 그 불편한 마음을 선배에게 들켜버렸다.    



누구나 그렇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늘 조심스럽고 관계로 깊이 연결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항상 왁자지껄한 가운데 풍요 속의 빈곤을 겪기도 하고, 마음이 힘들어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추어 있을 때 슬며시 다가와 주는 고마운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이 어떻게 들리는가? 이 말에 쉽게 동의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것처럼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데다가, 남몰래 마음고생을 하던 J를 토닥여준 선배의 배려도 그녀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데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관심이 없다'는 말은 ' 남들은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따라 배려와 눈치, 셀프모니터링이 구분된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당신의 관점은 어떠한가? 타인은 자신의 거울이다.




to be continued…



(이번 포스팅은 칼럼에 기고했던 글의 일부를 재인용하였습니다.)

https://www.g-enews.com/view.php?ud=20200316110405155e8b8a793f7_1&ssk=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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